[의료칼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에 의대를 신설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의료칼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에 의대를 신설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 승인 2023.12.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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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의대 정원 확대라는 이슈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쪽으로 대세로 굳어지는 듯하자 곳곳에서 의대를 신설해 달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는 자기 지역에 의대를 신설하겠다고 선거운동 하듯이 뛰어 다니고, 심지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늘린 정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대형 병원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뒤따라 늘어날 전공의 T.O.를 자기 병원에서 가져가야 된다고 주장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의대 신설을 요구하며 삭발 투쟁까지 나섰다는 것이다. 의사 숫자가 부족한 것이 맞는지 면밀히 검토해보고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국민 건강에 득인지 실인지를 고민할 시점에서,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정치권, 대학교, 대형병원들을 보면서 한숨만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는 분명 잘못된 판단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면 새로운 의대를 만드는 것 보다 50명 이하의 기존 미니 의대의 정원을 늘려주는 것이 합당하다. 한국은 인구당 의대 숫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인구 167만 명에 의대 1개이고 일본은 156만 명에 1개인 반면 우리는 100-130만명당 1개로, 인구에 비해 의대가 많다. 10명을 가르치든 100명을 가르치든, 기초와 임상을 포함해 가르치는 과목이 많아 100여명 이상의 교수가 필요하고 막대한 설립 비용이 들어가는 부속병원까지 필요한 의대의 특수성을 고려해보면 50명 이하의 미니 의대는 매우 비효율적이며,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다. 통상 적절한 의대 입학정원은 80-120명인데, 미국 의대는 평균 입학정원이 153명, 일본은 116명이지만 한국은 77명밖에 안 된다. 1985년 이후 신설된 의대 모두가 50명 미만의 미니 의대이며, 이는 의학적 혹은 교육적 필요에 따라 의대를 신설한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의대를 여기 저기 선물(?)한 결과물이다. 미니 의대가 넘쳐나는데도 다시 미니 의대라도 신설하자는 주장을 보고 있으면, 국민건강을 위해 의사가 부족하니 의대정원을 확대하자는 것은 핑계이고 자기 지역과 대학교에 의대를 신설하고 싶었던 것이 본래의 속마음이 아니었던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리고 현재 입학 정원의 2배도 당장 수용 가능하다는 전국 의과대학 측의 발표를 보면 합리적인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 버린다. 애초 의사 숫자가 부족한가에 관한 논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냥 자기 이익 챙기기 이전투구 도박판일 뿐이다.

소위 'Big 5'로 불리는 수도권 대형 병원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전공의 T.O. 증가분을 가져가겠다는 것도 국민건강권을 도외시한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우수한 의료 인프라, 세계적인 교수진 등 양질의 전공의 수련 여건을 내세워 전공의 T.O. 증가분을 수도권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나,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거점 대형 병원들을 집중 육성하려는 노력에 정면 배치된다. 전체적인 국익과 상충되어도 무시하고 내 병원을 더 키워보겠다는 얄팍한 속내인 것이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2.6명으로 OECD 최하위권이라는 통계 자료에서 시작했다. 이 통계는 팩트가 맞다. 그런데 이 통계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지극히 지엽적인 숫자에 불과할 뿐, 의사가 부족하다고 결론지어 주는 자료는 아니다. 우리나라 의사의 1인당 진료 횟수는 OECD국가 중 최고이다. 즉, 의사 숫자는 적으나 격무에 가깝게 의사들이 진료를 많이 하므로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반면 의사가 가장 많은 그리스, 포르투갈 등은 의사는 많지만 의사의 진료 횟수가 한국의 1/10도 되지 않아 의사 보기가 힘들다. 이들 나라에서는 의사가 사실상 공무원에 가깝다 보니 수입이 정해져 있어 의사가 굳이 열심히 환자를 많이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진료 횟수가 늘수록 수입이 증가하므로 의사들이 열심히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응답의 통계 조사를 보면 한국은 OECD국가 중 9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의사 숫자가 많은 국가에서는 병원가기 힘들고 하위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병원가기도 쉽고 의료 만족도가 상위권에 속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 전 정권에서 의사 부족의 근거로 제시했던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OECD 최하위권이라는 통계 자료는 실상과 거리가 먼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결국,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틀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필요한 일인지 근본에서부터 꼼꼼히 따져보자.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슬픈 현실을 어찌해야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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