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정규혁 첫 피리 독주회…7일 대구문예회관
국악인 정규혁 첫 피리 독주회…7일 대구문예회관
  • 황인옥
  • 승인 2023.12.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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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선율 주도하는 피리로 관객과 소통하고파”
‘경기민요’ 등 전통 국악 4마당
“연주 성공 비법은 꾸준한 연습
연주력 확인·피드백 받기 위해”
연주가 자유로운 생황은 4회 경험
청년 국악인 기회 주려 ‘민음’ 설립
영천 시민 위해 뮤지컬 제작 한창
인물-태평소
피리 연주자 정규혁

국악인 정규혁에게 “피리가 좋은지?, 생황이 좋은지?”를 묻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질문하는 것과 같다. 각각의 악기가 가지는 매력이 존재하기에 경중의 무게를 재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황은 전통 악기지만 현대적인 감수성을 수용하는 성품이 있어 창작곡 연주에 효과적인 반면, 피리는 정통 정악(正樂) 표현에 주효하다. 정규혁이 생황 독주회에서 뉴 에이지 음악을, 피리 독주회에서 전통 국악을 연주하는 것은 악기마다의 특성을 반영한 때문이다.

국악 연주자 정규혁의 피리독주회가 7일 오후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열린다. 생황으로는 네 번의 독주회를 열었지만, 피리로는 첫 독주회다. 이날 공연에는 장구 최광일, 대금 박종현, 아쟁 배런, 해금 김승태, 사회 황다능 등이 함께 한다.

첫 피리 독주회인 만큼 준비는 단단히 했다. 연주곡은 모두 전통 국악으로 구성했다. △박범훈류 피리 산조 △경기민요 긴아리랑, 금강산타령, 노랫가락, 창부타령 △염불풍류 △경기호적풍류 등의 4 마당을 연주한다.

‘박범훈류 피리 산조’는 피리의 좁은 음역을 고려해 전조를 중심으로 가락이 구성되는데 덜음차기, 목치기, 혀치기, 비청과 같은 피리의 독특한 연주법이 가락의 시김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산조다. 서울과 경기도 지방을 중심으로 불리던 ‘경기민요’ 곡들은 감정표현이 부드럽고 가락들이 서정적이며, 경쾌하고 분명한 창법을 특징으로 한다.

또 ‘염불풍류’는 지방 관아의 연향, 민간음악, 무속음악, 탈춤반주 등으로 널리 활용돼왔다. 현재까지도 무대 음악로의 기악합주, 승무의 반주곡, 양주산대놀이, 봉산탈춤의 노장춤 반주, 서울과 경기지방의 굿 음악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경기호적풍류’는 서울경기 지역의 태평소 가락으로 구성해 남도의 것과 다르게 호쾌하면서도 시원한 멋을 느끼게 한다. 장단이 교차해 화려한 구성이 보이며 변화하는 장단 속에는 경기무악의 향취가 배어 있으며 흥겨운 경기민요의 흥취도 아울러 살아있다.

첫 피리 독주회를 앞두고 떨림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를 만나 각오를 묻자 “연습 때의 70%의 역량만 발휘하면 좋겠다”고 했다. 늘 그렇듯 무대 위에 오르면 떨리고, 운이 안 좋으면 악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연주자들은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연습이 충분할수록 무대 위에서 실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사실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매일 8시간은 피리가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꾸준한 연습만이 연주력을 향상 시킨다는 믿음에서 연습은 그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취미 부자’인 것이 능력인 시대지만 그는 취미마저도 피리 연습일 정도로 지독한 연습광이다.

그의 지독한 연습 패턴은 피리를 처음 접할 때부터 굳어진 습관이다. 국악과의 인연은 빨랐지만 일찍부터 예술을 목표로 진학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은사의 권유로 단소와 대금을 먼저 시작했다. 길이가 짧은 손가락 때문에 피리로 악기를 바꿨지만 국악에 빠져든 시기였다. 문제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서다. 부모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음악에 대한 절박함을 깨닫고 고 2때 경북예고로 편입했다. 이후 경북대를 거쳐 동대학원 예술대학 일반대학원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초등학교 은사인 이이동으로부터 시작한 피리 공부가 더 크게 성장한 것은 서울에서다.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 서울로 상경해 최광일로부터 사사하고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피리정악 및 대취타 전수자이자 서울시무형문화재 삼현육각이수자로 선정된 것은 서울에서 기반을 쌓은 결과다.

자그마한 대나무관에 구멍을 내어 양손으로 움켜쥐며 연주하는 피리는 당찬 소리를 대며 음악의 흐름을 주도한다. 여러 음악 갈래에서 주 선율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 역할을 하는 악기다. 향피리, 세피리, 당피리 등 나무관의 모양과 굵기가 조금씩 다른 3가지 종류로 나뉜다. 피리연주자는 3 종류의 피리를 섭렵해야 하며, 생황이나 태평소 등의 관악기에도 능통해야 한다. 그 역시 관악기를 두루 배웠다. 생황과 피리는 독주회 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그가 피리와 생황의 차이를 설명했다. 피리는 민감하고 생황은 훨씬 자유롭다고 했다. “피리는 연주하는 동안 깨지기도 하고 땀이 입술로 흐르면 연주 자체가 어렵게 됩니다. 상황적인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죠. 그에 반해 생황은 보다 안정적입니다.”

그에게 뛰어난 피리 연주자가 되기 위한 자질을 묻자 “탄탄한 기본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주력이 조금 떨어져도 취법이나 음계를 확실히 지키면 절반은 성공적인 연주가 된다는 의미였다. “수학 공식을 알면 응용문제가 나와도 잘 풀 수 있듯, 곡의 근본을 알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를 연습벌레로 이끈 이유다. 그는 기본기가 탄탄하게 갖춰졌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입힐 수 있다고도 했다.

국내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부와 명예는 극소수 예술가들의 전유물이고 절대다수 예술가들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절망적이다. 후자일 때 예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연주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 대안이 연주와 자영업의 병행이었다. 그는 고향인 영천에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카페를 운영하며 연주자의 삶을 이어간다.

“최소한의 경제적인 안정 없이 연주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자립적인 기반을 마련했어요.”

사실 그는 무대 복이 많았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무대에 오르기 시작해 졸업 후에도 꾸준하게 공연에 참가해왔다. “운이 좋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운이든, 실력이든 행복한 상황이다. 그럴수록 그의 뇌리에 질문 하나가 떠나지를 않았다. 주변의 청년 국악인들의 암울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긴 시간을 들여서 공부했는데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협동조합인 국악컴퍼니 ‘민음’을 설립한 것은 청년 국악인들의 자생력을 높여보자는 취지였다. 그의 자립은 물론 주위 청년 연주자와 함께 계속해서 예술가로 살아남자는 것이 ‘민음’의 방향성이다. ‘민음’을 비영리단체가 아닌 영리단체로 설립한 이유도 활동영역을 전국으로 넓히고, 경제적으로도 자유롭기 위함이다.

현재 ‘믿음’은 국악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제작이 한창이다. 공연은 영천에서 하게 된다.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무대 기회를 제공하고, 영천 시민들에게는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기획이다. “영천에서 아이들에게 강좌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이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직접 제작해서 공연하기로 했죠.”

전통하는 요즘사람들 ‘트래덜반’의 동인으로 국악컴퍼니 ‘민음’ 협동조합의 대표로 활동하는 그에게 독주회 무대의 의미를 묻자 “내 연주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라고 했다. “아직은 모자란 연주자지만 독주회를 통해 저의 모자람을 파악하고, 관객들로부터 피드백도 받으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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