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층간소음, 마음의 공간이 부족해서 아닐까?
[대구논단] 층간소음, 마음의 공간이 부족해서 아닐까?
  • 승인 2023.12.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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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함께 살아가는 공간인 아파트. 과연 언제부터 지어졌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울 충정로에 세워진 5층 건물, 해방 이후 처음 지어진 아파트는 1959년 중앙산업이 지은 ‘종암아파트’이다. 그 당시 건축기술과는 비교가 안 될 현대 건축의 발전은 눈부시다. 컴퓨터 지원 설계(CAD)와 3D 프린팅을 이용하여 설계 과정이 더욱 정교해지고, 건축물의 안전성과 효율성은 향상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편의시설도 다양해져서 단지 내 도서관이나 수영장으로 시간을 내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장점들로 아파트의 보급률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인 공간이니만큼 부작용도 상당히 심각하다. 다시 말해 층간소음으로 생긴 폭력 등 강력 범죄는 최근 5년 새 10배나 급증하였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층간소음 문제를 4대 중점 과제로 선정하고 강력한 대책을 예고하면서 건설사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건설사들도 새로운 마감재와 바닥 설계 개발에 신경 쓰고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에 현장에까지 적용 완료해야 하기에 개발 속도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등 3사는 층간소음 저감 기술 공동 개발을 시작하였고, 현대건설은 층간소음 전용 연구소까지 설립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아파트에 살았다. 동네 처음 세워진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단독 건물. 그때 윗집 누가 살았는지, 앞집에 몇 명의 아이가 있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아무도 없을 때 옆집 아주머니가 어린 동생을 봐준 기억, 편의점이 없던 시절, 윗집에 가서 식은 밥과 라면을 빌려 온 기억, 떨어져 사는 이웃사촌이 한곳에 모여있는 곳이 바로 아파트였다. 나의 기억은 아련한 좋은 추억뿐이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키워드와 함께하는 요즘 보도를 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층간소음으로 결국 이사는 가는 친구도 보게 되고, 아침마다 얼굴을 붉힌다는 지인의 소식도 듣는다.

며칠 전의 일이다. 밤 10시가 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인터폰으로 연락이 왔다. 아이들은 독서실에서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에서 경비실로 연락을 한 모양이다. 정말 소음을 내었다면 미안하다며, 조심하면 되는 문제이지만, 억울한 소리를 자꾸 듣는 것은 그리 편한 일이 아니다. 내심 내려가서 말하고 싶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 자료를 찾아보았다. 경실련에서 최근 발표한 층간소음별 원인별 비율을 살펴보면 뛰거나 걷는 소리 68%, 망치나 가구 끄는 소리가 각 7%, 5%를 차지했고 원인불명의 소리가 20%를 차지했다. 즉 층간소음은 반드시 윗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여러 성격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해서 맞다고 하면 그것이 진리가 되고, 사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층간소음의 문제 원인 역시도 정확히 파악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방구석마다 CCTV를 설치해서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정부의 강력한 지침에 따른 건설사의 노력으로 앞으로 지어지는 집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계절마다 바뀌는 옷처럼, 몇 년마다 바꿀 수 있는 승용차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 제도적인 프레임에 의존하여 층간소음을 해결하는 것에는 상당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외면에 있지 않다. 우리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내가 조금 더 편하면 남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는 마음, 그래서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파트라는 공동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파트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적절한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웃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클수록 층간소음은 점점 작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따스한 사랑의 씨앗을 뿌려 함께 수확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아침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등을 돌리는 이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남을 조금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입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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