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상주예술가
[문화칼럼] 상주예술가
  • 승인 2023.12.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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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내년도 베를린 필 상주음악가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성진은 베를린 필과 2017년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부상으로 공연을 취소한 랑랑의 대타를 찾고 있었는데 좀처럼 피아노 연주자를 칭찬하지 않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에게 조성진을 추천하여 이루어진 공연이어서 더 큰 화제였다. 그 후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무관중 온라인 협연으로 다시 한 번 인연을 맺은 뒤 이번에 세 번째 협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이 소식이 전해졌다. 정말 관계의 놀라운 발전이다. 대타로 시작해 불과 6년 만에 세계최고 오케스트라의 상징적 음악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내년도 상주음악가로서 조성진은 베를린 필과 1~2차례 협주곡 협연을 비롯하여 단원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실내악 활동 그리고 베를린 필의 젊은 음악인 양성 기관인 카라얀 아카데미와도 협력 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베를린 필이라는 절대적 완성도를 가진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협연도 그러하지만 섬세한 숨결을 서로 들으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실내악 연주들은 조성진으로서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관객들은 조성진이라는 아티스트의 다양한 음악적 매력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리라 본다.

최근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작곡가 한 명과 세 명의 연주자를 내년도 상주 아티스트로 발표하였다. 작년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선정하여 두 사람 각각의 연주와 더불어 ‘카바코스와 친구들’이라는 통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음악회까지 만들었다.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은 2005년 통영국제음악제 상주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서울시향 상주음악가의 면면도 화려하다. 진은숙은 2006년부터 무려 12년간 상주작곡가로 활동하였으며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바이올리니스트 테츨라프 등 세계적 음악가들을 선정하여 그들과 함께 음악회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금호아트홀에서의 상주음악가 시스템은 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아름다운 나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나 예술단체에서 이미 정상에 오른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의 합일점을 찾아 나간다면 금호아트홀에서는 미완의 대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피아니스트 김다솔을 시작으로 선우예권·박종해,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양인모·이지윤·김동현·김수연, 첼리스트 문태국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 거쳐 갔고 내년도 상주음악가로 피아니스트 김준형을 선정했다.

면면을 보면 지금은 대부분 정상급 연주자로 자리매김들을 했지만 년 4~5회에 이르는 독주회 및 앙상블 연주 기회가 주어지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를 통해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금호아트홀의 미래세대 육성을 위한 상주음악가 제도가 오늘 날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상주음악가 또는 상주예술가라는 제도는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공공도서관에서도 상주작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분야 역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 시스템이 제법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미처 다 알지는 못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례들과 롯데콘서트홀,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오펀 스튜디오 등 몇몇 경우 외에 국내 공공극장·연주단체의 상주음악가 제도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공공 극장에서는 최고의 공연을 관객들에게 소개해야하는 기능만큼이나 지역 아티스트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야하는 의무 또한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주 시스템은 우선 사람을 키우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한사람의 뛰어난 예술세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함으로써 폭넓은 작품성을 관객 앞에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해서 과거 일하던 곳에서 ‘상주음악가’와 시립예술단원을 대상으로 ‘올해의 아티스트’ 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다.

특히 시립예술단에 대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한 이유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량을 키워나갈 때 존재의 의의를 더 잘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이 프로젝트도 필요·충분조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 게다가 때로는 저항이 따를 수도 있다.

베를린 필과 조성진의 만남을 바라보자니 부익부 현상을 보는 것 같은 부러움과 함께 도처의 빈익빈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예술계의 미래를 위해 가장 효과적 동반성장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제도가 우리 주변 여기저기서 활발히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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