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립청송야송미술관, 우승우 ‘재 너머 꽃에 서다’展
군립청송야송미술관, 우승우 ‘재 너머 꽃에 서다’展
  • 황인옥
  • 승인 2023.12.2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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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미술 통해 기법 개발…“본질 표현 열망 시대불문”
“본질 추구 유효한지 의문들 때
알타미라 벽화서 기운생동 포착
본질은 포기할 수 없다고 확신”
흙·숯 발라 암각하듯 긁어 덧칠
동양화 삼원법·역원근법부터
선사시대 비수조절까지 차용
형식은 동서 혼용 내용은 동양
“현대는 평면화로 회귀하는 중
동양성, 새 미술의 토대될 것"
우승우 작가
우승우 작가가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 걸린 작품 ‘청송별곡-사과를 따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피카소가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고 “우리들 중 누구도 그렇게 그릴 수 없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것은 퇴보했다”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충만한 예술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결국, 선사 시대 인류의 예술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피카소의 진단이 아니던가.

문자가 없어 지식이 체계화 되지 못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인식체계 또한 단조로웠던 선사 시대의 인류는 단조로움을 잡다한 수식들을 차단하고 핵심 원리나 본질에만 집중하는 원동력으로 활용했다. 이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피카소의 폐부에 대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채워진 이유일 것이다.

본질에 집중했던 선사시대의 미술은 문명화를 거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동양 정신성의 핵심으로 여전히 ‘본질’에 주목했지만, 서양은 대상의 현상 묘사에 편중됐다. 오늘날은 물성이나 표현적인 기법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 짓는 것이 무색할 만큼 이분법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양의 많은 작가들은 ‘본질’에 집중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군립청송야송미술관에서 지역작가 초대전으로 ‘재 너머 꽃에 서다’전을 열고 있는 우승우 작가의 작품을 동서양 미술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형식면에서 이미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보지 못한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는 내용면에서 여전히 동양성에 기대고 때문이다.

그의 미술은 서양의 물감이나 동양의 먹을 혼용하고, 이질적인 물성인 흙과 물감을 혼합하며 재료적인 한계를 넘어서지만, 한국화가 추구했던 정신성만큼은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끊임없이 확장된 예술세계를 추구해온 그에게 정신성의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와 결부된다.

“어릴 때부터 서양적인 미술교육을 받아서인지 젊은 날 야외 사생을 나가 산수를 그릴 초기에 완전히 헤맸어요. 서양적인 원근법이나 표현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당시 한국화가로서 화면의 공간감과 깊이감을 알려면 서양화보다 산수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우승우작-꽃에서다-해바라기
우승우 작 '꽃에 서다-해바라기'. 군립청송야송미술관 제공

물성과 형상에서 예술적 자유를 구가하지만 정신성에선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그의 고집은 화면 곳곳에서 묻어난다. 서양 회화처럼 동물화나 풍경화를 구사하지만 잡다한 수식은 모두 제거하고 대상의 본질적인 형상만 포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서양의 원근법 대신 삼원법이나 역원근법을 차용하며 시각적인 다채로움도 끌어들인 것도 동양회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위, 아래, 옆에서 바라본 시점들을 하나의 화면에 조화롭게 표현하며 다양한 차원에서 풍경을 조망한다.

“자연의 현란한 아름다움보다 사물의 근원과 본질을 추구하며 기운생동을 얻고자 한 동양 수묵 본연의 정신은 그대로 지키고자 합니다.”

전통 동양화는 유교나 도교, 불교 철학을 근간으로 했다. 자연, 인물, 풍경, 동물을 최소한의 간결함으로 포착하며 사유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유불선(儒佛仙)은 하나의 개념에서 서로 소통했다. 바로 ‘균형’이었다. 동양에선 자연과 인간, 육체와 이성, 이념과 실천 등의 이분법적 개념들을 단절하기보다 소통시켰다. 분열보다 조화를 추구한 결과다. 전통 동양화는 그런 철학적인 바탕 위에서 있었다.

우승우의 주제의식 또한 동양 정신을 계승한다. 그는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추구한다. 시각적으로 감각하는 손맛과 내재된 정신성의 조화다.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창작적인 개성’을 획득해 간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대상의 핵심, 즉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새롭다고 할 순 없다. 그 옛날 철학자들이 그랬듯, 그 역시 동양철학에 심취한 시간들이 짧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본질’을 향한 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동양회화를 동시대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당위론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지금 시대에 본질에 천착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또 다른 문제로 다가왔다.

그때 흔들리는 그를 붙잡아 준 것이 알타미라 벽화였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기운생동의 원천에 본질이 있음을 포착하고 자신의 산수화나 동물화에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대상의 생명력을 높이는데 ‘본질’은 포기할 수 없는 요소라는 확신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얻었습니다.”

군립청송야송미술관 전시에는 초기 작품부터 현재의 화풍까지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동양화를 현대적 재해석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그의 정신세계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가 한 눈에 드러난다.

그의 초기 작품인 산수화나 문인화 연작에선 자유분방함이 전통 동양화의 경직성을 대체하고 있다. 소나무나 난의 형상을 비현실적으로 그러거나, 전통 산수화에 현대의 상춘객이나 등산객을 추가한 시도들에서 일상의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선비들의 고고한 철학적 사유를 서술하는 위치에서 범인들의 일상 속 삶의 표현으로 태세 전환 한 결과다.

특히 대숲을 거니는 미니스커트에 부츠를 신은 여인이나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나 사과나무를 활보하는 코끼리나 자동차는 과거와 현재,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혁신의 이중주처럼 다가온다. “거창한 철학이나 사상이 아닌 일상 속 범인들에게서 철학적인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이런 시도들은 대중과의 소통력을 높여 주었어요.”

2021년 입국해 고향인 청송에 터전을 잡고부터 화풍의 변화가 극적으로 진행된다. 흙과 숯을 한지나 캔버스 표면에 바른 후에 암각 하듯 전각기법으로 긁어내고 물감을 덧칠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는 선사시대 미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기법이다. 특히 비수조절이 도드라졌다. 대상을 굵고 가늠, 크고 작음으로 조절하며 구성하는 방식으로 공간분할을 감행한다.

“비수조절이나 삼원법 등의 전통 방식들을 현대회화에서 활용하게 되면서 작업 세계가 훨씬 풍요로워 지고 깊어졌어요. 작업은 시각적으로 확보한 현대성에 내면적인 전통의 정신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전시작 ‘대숲 가는 길’에선 2009년부터 10여년간 중국 항주에서 활동한 이력이 발견된다. 전각에 능한 특성을 살려 전각 자체가 그림의 일부로 확장한 연작이다. 작업 하단에 3~4개에서 많게는 7~8개의 전각이 낙관돼 있다. 그는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 간결하지 못한 전각은 오히려 작품을 답답하게 하거나 무겁게 만든다고 인식한다. 이유는 다양한 전각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서다. 그의 전각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다채롭다.

“전각은 작품의 주요 조형 요소 중 하나이며 작품을 빤짝빤짝 팽창시켜 주거나, 화면의 막힌 기운을 뚫어주기도 하고 새나가는 기운을 막아주기도 하는 최종적으로 기운생동을 결정하는 조형입니다.”

작품 ‘꽃에 서다-해바라기’ 연작과 ‘청송별곡-사과를 따다’ 연작들은 동양화의 일필휘지에 서양화의 색을 중첩하는 방식을 동시에 구사한다. 숯이나 흙을 아크릴 물감과 혼합한 후 바탕에 수없는 붓질을 거듭한다. 중첩하는 과정에서 오묘하게 발색된다. ‘꽃에 서다-해바라기’에는 과감한 절제가, ‘청송별곡-사과를 따다’에는 비수조절이 두드러진다.

여백에 대한 굳건한 믿음도 작품 ‘꽃에 서다-해바라기’ 연작에 명료하게 드러난다. 먹물을 바른 바탕 위에 한국화의 특성인 스밈의 효과를 내기 위해 그가 고안한 채색법으로 아크릴 물감을 단계별로 두들겨 입히는 과정을 거친다. 번질거리는 아크릴 물감의 빛을 흡수시키는 이런 채색의 중첩된 물성은 깊이감을 확보하는데, 여백을 빈 공간 이상으로 의미부여 하기 위함이다. 그에게 여백은 저 넓은 우주와 연결된 소우주다.

“고대 동양에서는 빈 공간을 하늘, 땅,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인(天地人)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했어요. 기(氣)로 가득 찬 생명의 공간으로 말이죠.”

그는 현대를 “평면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토대로 그림을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미술이었다면, 더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현대 미술은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미 서양에서도 고대적 문양이나 동양회화를 연구하고 벌써 평면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평면화는 이미 선사 인류에 의해 구현됐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고대 동굴 벽화는 평면화의 전형이다.

그가 비수조절이나 삼원법, 고대동굴벽화 기법 등을 통해 추구하는 미술 또한 평면화다. “이제는 동양회화에서 동양성은 새로운 미술을 위한 또 다른 토대가 될 것입니다.” 동양성에 서양적인 물성을 통한기법들을 추가하며 새로운 미술을 제시하는 우승우 개인전은 3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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