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訃告를 듣다
[좋은 시를 찾아서] 訃告를 듣다
  • 승인 2023.12.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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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섭 시인

귀동아저씨 부고가 가족 톡에 올랐다

여든일곱 아버지 가슴 훑었을 바람이 활자 틈을 헤집었다

이제 아버지 고물차에 함께 점심 마실 갈 누구도 없이

낫처럼 굽은 할매들만 남은 동리

뒷 도랑 갈라 터진 입술이 아려 노래를 멈췄다

땡볕 기운 자리에 앉아 재탕 우린 인삼주 유리잔에 따르고

아버지의 시선 텅 빈 허공을 헤집었다

탄식 같기도 한숨 같기도 한

꼬리 긴 숨소리 잘린 앵두나무 밑동을 맴돌다 스러지고

독한 술에 설 우려진 삼 냄새에 취한 아버지 두 눈으로 익은 해가 뛰어들었다

오래오래 사세요

거스름돈 쥐어주듯 던져진 안부 인사 한 마디

그리움 고파 앵두나무 베어낸 늙은 가슴으로

외로움 부채질하는 그 한 마디

고랑 깊은 골로 한 방울 서글픔으로 흘렀다

◇노준섭= 2006 시와창작 신인상. 시집 : 낮에 빠뜨린 이야기, 바람에 새긴 이야기, 여울에 흘려 보낸 이야기. 시극 논개, 남원동학, 고향임실 시나리오 문화행사 호국임실, 고향임실 기획 연출. 시문학밴드 시그널 리더.

<해설> 가족 톡에 오른 부고를 애잔하게 추적해 들어가면서 지난 어느 날 시골 마을의 풍경 속에서 만난 망자의 기억을 고스란히 그려놓고 있다. 동리는 낫처럼 굽은 할매들만 남은 동리. 땡볕 기운 자리에 앉아 재탕 우린 인삼주 유리잔에 따르던 한 사람이 결국 허공을 헤집고 떠난 그 슬픔을 그려내고 있는 시다. “아버지 두 눈으로 익은 해가 뛰어들었다”는 표현은 또 얼마나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표현인가. 거스름돈 쥐어주듯 던져진 안부 인사 한 마디가 오래 오래 후회로 남을 것 같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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