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최정윤 개인전…갤러리 팔조 내년 2월 3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최정윤 개인전…갤러리 팔조 내년 2월 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1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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劒 형상화 통한 인간의 욕망 종합적 표현
검은 무기 개념 보다 권위의 심볼
세라믹 검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이 조형훈련
목적 분명해도 은유적 표현 한계
재료 확장 위해 소금·실 등 사용
총천연색 꽃기둥 ‘중의성’ 지녀
조형물 보다 물성이 더 심상 자극
자신의 이야기 담아 진정성 확보
해외 미술 비평가·콜렉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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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작가가 검의 형상에 실을 감아 설치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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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작 ‘The flesh of passage(시간의 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소금기둥이나 실기둥 사이를 알싸한 겨울 공기가 휘감아 돈다. 검의 형상에 소금을 쌓아 올리거나 실을 감아 꽃으로 형상화한 최정윤의 조각설치작품이다. 수직의 검이 소금과 형형색색의 실을 만나자 단숨에 날카로운 검에서 신비롭거나 화려한 검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긴장과 이완이라는 중의적인 감성은 그의 작품이 갖는 매력 지점이다.

갤러리 팔조에서 한창인 최정윤의 개인전에 세라믹, 소금, 실로 제작한 검을 설치한 작품과 원사로 구현한 반입체 평면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 제목은 ‘시간의 살(The flesh of passage)’. 시간을 ‘time’이라고 쓰지 않고 ‘passage’라고 한 이유에 대해 그는 “단순한 시간을 의미하기보다 뭔가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은유적으로 ‘passage’라고 표현했다”는 답을 내놨다. 이번 전시는 세라믹으로 시작해 소금, 그리고 실로 형식의 변화를 거쳐 온 그의 작업 과정에 대한 시각적 서술이다.

인간의 삶을 심오한 종교나 냉철한 철학으로 제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원초적 생존 본능을 뛰어 넘을 순 없다. 의식주 없이 정의 실현이나 이웃 사랑은 불가능하다. 선 의식주 해결, 후 가치 추구인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필수고,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몸집을 키워왔다.

최정윤에게 ‘욕망’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핵심키워드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검(劒)을 모티브로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에게 검은 욕망의 상징이자 권력의 심볼로 인식된다.

검을 욕망의 대명사로 상징화하기 전인 10여년에는 삼족기를 욕망의 심볼로 개념화했다. 삼족기는 발이 세 개 달린 그릇으로, 기념주화 같은 의미로 제작된 기물이었다. 영토를 확장하는 등 권력자가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기념물이었다.

최정윤의 ‘욕망’에 대한 심볼은 확장을 거듭했다. 삼족기 이후 검(檢)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삼족기가 ‘욕망’을 개념화하기에 내재된 상징성이 그의 의도와 일맥상통했지만 조형적인 측면에서 힘에 부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삼족기 자체의 조형적인 미학이 너무 완벽했다. 그는 당시 “이미 완벽한 조형성에 제3자가 더 덧댈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새롭게 발견한 대상이 검이었다. 권력의 심볼인 검은 그에겐 삼족기의 확장된 버전이었다.

그가 “삼족기의 형태는 너무 완벽했고, 검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했다. “예부터 동양에선 검이 무기로서의 개념보다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저는 검이 가진 상징적인 면에 집중했어요.”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도자를 전공한 그가 만든 최초의 검은 세라믹 검이었다. 도자 전공자인 그가 도자기법으로 검을 소성하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마에서 검을 굽는다는 발상이 얼마나 순진한지를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직의 형태를 가마에서 굽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고, 그로인해 하나부터 열까지 제작 과정에서 스스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수직 검은 도자기법으로 제작하는데 가장 큰 난제는 흙과 가마 속 온도였다. 청동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강한 기운을 품은 검을 만들기 위한 좋은 흙을 찾는 것이 과제였고, 수직의 검이 실패 없이 가마에서 살아남는 적정 온도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그는 성공률 100%의 기록을 달성하고 만다.

“검을 세라믹으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과정들이 부단한 조형훈련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그가 검에 이입한 개념은 절대권력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이었다. 대상을 자르거나 베는 등의 검의 목적성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신 ‘욕망’이라는 의미적인 접근이 중요했다. 날선 청동검을 버리고 무딘 세라믹 검을 선택한 이유는 검의 상징인 ‘욕망’에 있었다. 세라믹 검에 집중할수록 기술적인 완성도는 높아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 한켠이 답답해져 왔다. ‘욕망’을 검의 형태적 상징에 기대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검은 목적성이나 상징성이 분명하고, 형태도 단조로워 직설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은유적이고 종합적으로 개념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는데, 검으로서는 한계를 느꼈죠.”

세라믹 이후 새롭게 선택한 재료가 소금이었다. 플라스틱 검에 소금과 실리콘을 혼합한 재료를 붙여서 소금 기둥을 만들었다. 소금은 역사적으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욕망’이라는 개념에서 소금은 삼족기와 검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속에 있었다.

소금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은 삼족기나 검과는 사뭇 달랐다. 정화나 영원 등의 종교적 개념까지 아울렀다. 욕망이라는 세속적인 개념과 영원이라는 종교적인 개념이 소금이라는 물성 속에서 서로 소통했다. “소금을 통해 ‘욕망’이라는 개념을 좀 더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신의 세계관을 펼치는데 한계를 두려 하지 않았던 그는 계속해서 재료의 확장을 모색했다. 소금에서 실로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검에 실을 감기 시작했고, 검의 허리 부분에 원사 덩어리를 집적하며 날카로운 검을 아름다운 꽃으로 치환해 냈다.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 기둥들이 도열하자 숨겨져 있던 욕망들이 꽃처럼 피어났다.

꽃도 소금처럼 내재된 개념이 단단했다. 이미 꽃은 보편적으로 욕망의 상징이면서 생명의 근원적 출발점인 생식기와도 의미적으로 연결됐다. 이유로 그의 꽃기둥은 욕망과 생명의 근원이라는 중의적인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소금과 꽃에서 생성이나 정화, 영원 같은 또 다른 차원의 개념들이 공존하지만 욕망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검이나 소금, 꽃은 내용적으로 유사성을 띠고 있습니다.”

실기둥 작업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총천연색들이 거침없이 몸을 기대고 피고 있다. 자칫 유치할 수 있는 색채감이지만, 생화 못지않은 끌림을 전달받는다. 작가는 극단적인 대비가 준 효과라고 믿는다. “색채 하나하나는 유치한데 극단적으로 대배시켰을 때 그 속에 다른 움직임을 느껴지는 것 같은 착시가 생겼어요.”

삼족기나 검 작업에선 조형성에 의탁했지만 소금이나 실로 넘어오면서 물성이 가진 언어성이 빛을 발했다. 조형보다 재료 자체에 내재된 상징성이 더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른바 재료의 언어성이었다. 소금이나 실은 검과 달리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했고, 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보다 종합적인 세계관을 펼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시각 예술인 미술에서 조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최정윤 역시 “조형으로 먼저 보면 그 작가의 생각의 깊이를 알 수 있다”며 조형의 기능을 충분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검이나 소금이나 검이나 실 등 서로 다른 물성들이 만나 충돌하며 뿜어내는 힘”을 더 믿는다. “조형적인 요소들보다 물성이 오히려 더 크게 심상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이는 조형과 물성을 동시에 연구해야 하는 이유죠.”

예술에도 도덕이 필요하다. 최정윤은 예술의 덕성으로 “진정성”을 말한다. 미술의 존재 이유는 감동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는 것인데, 감동의 원천이 ‘진정성’이라는 것. 그가 검에서 소금이나 실로 재료를 확장한 배경에도 ‘진정성’이 자리한다.

그가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던진 첫 질문은 “과연 얼마만큼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느냐?”였다. 현대에서 검은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로서의 목적성을 상실하며 박제된 유물로 존재 할 뿐이고, 검이 검으로서 기능 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가 검을 형상화 하는 것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조형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 그가 기준점으로 삼은 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경험치가 내재된 조형을 제시할 때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제가 직접적으로 호흡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검은 제 경험 밖의 소재이고, 소금과 실은 제 경험 안의 물성이라는 이유로 소금과 실에 더 많은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가 “50대 중반은 제 미술적인 활동이 더 솔직해지는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지천명이 되고 보니 겸손하게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내면을 끝없이 들여다보고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였어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볼타쇼 바젤, 아트파리, 비엔나아트페어, 아트스테이지 싱가포르 등에서 미술비평가와 콜렉터들로부터 주목 받으며 예술적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그의 갤러리 팔조 전시는 내년 2월 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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