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비 내릴 땐 다리를 꼬아요
빗물을 막으려면 허벅지부터 조여야 하죠
슬픔이 피어나지 않게 무릎에 무릎을 얹고
내 몸에 지은 집으로 내가 들어가요
저려오는 비굴 쯤은 꾹 눌러 참아내고
당신이 두려워지면 재빨리 문을 닫아요
다리로 지은 집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아무도 들 수 없고 나만 홀로 차올라요
고독을 배양시키면 아늑을 입을 수 있죠
◇정상미=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안개의 공식』이 있음. 2022년 서울문화재단 첫 책 발간 지원사업에 선정.
<해설> 요즘 시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시의 유형 중 하나는 시인의 연속된 동작을 통해 내면 감정을 드러내는 그런 시들이 유행의 추세를 이루고 있는 듯도 하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정상미 시인의 이 시도 몸이라는 생물학적인 등가물을 두고 비와 놀고 있는 여러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놓고 있다. 마른 마당에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비 내릴 때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마치 비 오는 날 화단의 나리꽃 하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볼 때의 감정처럼 다리, 무릎, 집, 문의 변신은 이 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있는 동작의 연속과 함께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 시는 분명 살아있다. 살아서 저릿해지는 비굴함을 꾹 눌러 참아내려는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