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자연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자연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 채영택
  • 승인 2023.12.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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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소통하기
겨울나무의군상
말없이 우직하게 서있는 겨울나무의 군상.
 
사진2
한겨울 낙엽으로 은밀하게 덮힌 땅 속 뿌리들의 대화가 궁금하다.

올 봄 필자는 고향 시골집에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꽃 중에서 주황색의 나팔처럼 큰 꽃을 피우는 덩굴식물 능소화 한 뿌리를 어머니와 함께 시골 담장 밑에 심은 적이 있다.

작은 나무였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수 많은 꽃송이가 탐스럽게 달려 어머니 뿐만아니라 이웃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 때문에 두꺼운 시멘트로 포장된 앞마당의 일부를 깨어내고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고 돌아왔는데 그 후 일주일쯤 지나 다시 시골로 갈 일이 생겨 고향 집을 찾았다가 심어놓은 능소화 나무가 그 자리에서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어머니한테 이유를 물은즉 능소화를 집안에 심으면 결혼한 부부가 헤어진다는 속설을 동네 친구분한테서 들었고 그 이유 때문에 당장 뽑아서 그것도 집에서부터 아주 멀리 버렸다는 것이었다.

아, 내가 이 나무에 대해 심기 전 나무와 관련한 설화와 전설 등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당신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 이런 사단이 났구나 싶어 뒤늦게 이 나무는 과거 양반집에만 심었으며 선비들의 과거 급제시 커다란 꽃을 머리에 꽂아서 축하를 해준 어사화라는 사실과 일반 평민들이나 백성들은 이 나무를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 등 만약 이를 어기고 심었을 경우 장형(杖刑)의 처벌을 받았다는 등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상히 말씀드린 적이 있다. 물론 부부가 헤어진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사실까지 모두 전해드리고 나서야 어머니는 당신께서 하신 행동이 잘못되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경청의 힘
사람은 매일 소통하며 살아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
“말 배우기는 2년 걸리지만
침묵 배우기는 60년 걸려”

이렇게 된 웃지 못할 사연의 연유는 아주 작은 소통의 문제였는데 나만이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어머니의 기준과 맞지 않는 일방적 소통의 결과 빚어진 일이었다. 사실에 근거하더라도 왜곡되고 변형된 지식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타인에게 축적된 그 지식과 기억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고 전달자와 피전달자와는 아주 가까운 동네 친구 사이라는 것, 그리고 생활의 물리적 공간이 좁은 관계로 오류의 지속적인 흐름을 어느 단계에서나마 차단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러한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았으니 그 후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이 났다.

지금의 우리는 누군가와의 소통으로 매일 매일이라는 시간을 쪼개어 쓰고 그 소통의 결과로 빚어지는 각종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서로 나누고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살아간다.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정보의 대홍수 속에 우리의 일상이 엉망이 되기도 하는데 그 대홍수의 한 켠에서 솟아나오는 맑은 옹달샘 같은 신선한 정보가 때로는 차디찬 지성의 죽비가 되어 흐트러진 우리의 정신을 바로 세우기도 한다.

정보는 소통이라는 형태로 다양한 매체와 공간 속에서 흐른다. 그것이 일대 일이든 일대 다수든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생산되고 가공되어진다. 소통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주고 내 의견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우선 인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가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자연의 소통
몸짓·소리로 소통하는 동물들
식물은 화학물질 분비로 신호
위대한 인류의 중요한 생존 열쇠

식물과 소통에 달렸음을 깨닫길


많은 사람들은 달변가가 소통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묵묵히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훨씬 더 소통을 잘 한다고 본다. 바로 ‘경청(傾聽)’하는 자세다. 경청이란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공감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경청은 대화의 과정에서 그 사람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 S그룹 이건희 회장은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경청은 백 마디 말보다 강하다!”라고 경청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했다. 특히 우리나라 5대 그룹의 임원이 되려는 자는 바로 ‘경청하고, 경청하라’라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도 했다.

경청에서 청(聽)의 한자를 자세히 풀이해 보면 ‘열 개의 눈을 가지고 마음을 하나로 해서 임금의 말을 귀로 듣는 것처럼 듣는 일’이라 해석할 수 있다. 세상에는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경청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 중에서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리더십의 권위자이자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란 책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화 습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경청하는 습관’을 들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말하기, 읽기, 쓰기에만 골몰해 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감성을 지배하는 것은 귀다.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 그리고 어떻게 경청의 힘을 획득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고, 미국의 경영학자이자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내가 만일 경청의 습관을 가지지 못했다면 나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다.

타인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것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나의 사고와 가치관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말하는 자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이것 이상의 소통 방법은 없을 듯 싶다. 그렇다면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서는 과연 어떻게 소통을 할까. 식물은 인간이나 동물과 달리 자신의 생존 공간을 평생 한 곳에서 보내야 하며 온갖 자연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원래부터 그렇게 존재하도록 태어난 식물에게 최소한의 방어 기재는 무엇일까.

식물이 모여 있는 숲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스스로 방어하는 수단들이 있는데 특히 식물 내부의 화학적 물질의 분비를 통해 자신의 위험을 감지하거나 옆에 있는 다른 식물에게 전기적 신호를 보내 위험을 알리고 위험 요소를 제거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일부 참나무 및 너도밤나무의 잎, 가문비나무의 침엽은 곤충 포식자가 그들을 갉아먹을 때 전기적 신호를 만들어 낸다. 전기적 자극은 나무의 나머지 부분에 메시지를 보내어, 1시간 이내에 맛이 나빠지게 하여, 해충이 떠나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전기적 자극은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나 생명체를 만드는 빛, 바람, 구름, 수증기 등에 의해 음전하와 양전하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이들의 상호 작용으로 생기는 전기적 반응이다. 이 두 가지 전기적 반응과 화학 물질은 식물의 다양한 위험 요소로부터 회피하는 중요한 생존 수단이 된다. 이것은 오로지 이들만의 소통 수단인 것이다.

식물은 뿌리를 통한 소통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식물들의 땅속 뿌리는 영역과 양분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서로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소통 역시 이뤄진다. 옥수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옥수수는 이웃 옥수수와 잎이 접촉하면 이웃과 닿은 적이 없는 쪽으로 뿌리를 뻗는다고 한다. 이것은 피토크롬이라고 하는 빛 수용 단백질이 렌즈 역할을 해서 충분한 광합성을 위해 잎들끼리 서로 중첩되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조절하는 눈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잎들은 서로 빛을 잘 수용하기 위해 가장 최적의 각도로 배치되는 것이다. 즉 지상의 접촉을 감지하고 이웃의 존재를 알리는 화학 정보를 땅속에 보낸 결과다. 어떤 식물 학자는 이를 두고 식물의 ‘월드와이드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동물에 있어서도 화학 정보 역시 소통의 중요한 방법인데 누에나방 암컷은 찍짓기를 위해 ‘봄비콜’이라는 페로몬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수컷을 유혹한다. 화학 물질의 분비는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 달라는 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은 식물과는 좀 더 넓고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하는데 시각적 방법이나 청각을 통해서도 소통을 한다. 짝짓기를 앞둔 새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구애 행동을 보고 짝을 선택을 한다거나 소리의 음파를 분석해서 상대의 의사를 읽는다거나 하는 모든 행위가 소통이 되는 것이다.

대자연의 모든 생물은 그들의 위계에 맞는 다양한 소통 방법으로 서로 공생하도록 질서가 부여되어 있다. 위계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먹이사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식물이 그 바로 위에 있는 동물을 다스리고 또 다시 그 위계 순서대로 최후의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류라는 종을 다스린다. 결국 인간도 식물에 의해 길들여진 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지금 겨울 나무는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하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문명의 건설자이자 선악의 분별과 이성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지닌 인류 생존의 열쇠가 바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식물과의 소통임을 엄중히 깨달았으면 한다.
 

 

임종택 <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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