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흐려 있는 콩나물국
비틀린 멸치나 북어살 한 점 없이
쏟아버리면 금방 잊힐
냄비 바닥에 고인 미련 몇 가닥이
개수구에서 주춤거렸다
붉고 노랗고 푸릇하니 다 제 색깔 가진 것들
물을 더 넣고 팔팔 끓여
허물해진 파와 당근채와 콩나물로 또 한 끼를 넘기니
아렸던 속이 순해졌다
너덜해진 내가 쓸모없게 느껴질 때마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수도
얼룩들 햇볕에 널 수도 없어서
지나간 어둠을 조금 더 부어 끓이곤 했다
바닥의 건더기들 휘젓다 보면
쉰내를 날려 보낸 색깔과 아삭거림이
애써 거품으로 떠올랐고
멀리 가는 꿈은
거품 방울에도 목 축이고 있었다
◇김남이= 경북 상주 출생. 201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상처는 별의 이마로 가려야지』 가 있음.
<해설> 콩나물국 끓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콩나물국을 맛있게 끓일 수 있다는 건 어떤 경지가 필요하다. 재료의 선별에서부터 오랜 경륜으로부터 전수가 있었거나 부단한 노력에서 그 맛은 배가 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이 잦은 과음을 즐겨서 정성으로 아침 해장국으로 콩나물국을 끓여본 많은 경험이 있다면, 시원한 맛의 콩나물국을 잘 끓이지 않을까. 시인은 콩나물국을 통해서 어떤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를 위해서 끓인 콩나물국이 그만 식어 아련한 기다림에 살짝 흐린 콩나물국에 다시 불을 가하는 그런 연속이 또한 삶이라는 걸 이 시는 암시하면서 “너덜해진 내가 쓸모없게 느껴질 때마다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수도, 얼룩들 햇볕에 널 수도 없어서 지나간 어둠을 조금 더 부어 끓이곤 했다”는 고백적 부언을 덧붙이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