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새해 벽두에 다시 읽는 신화, ‘시지프스’
[화요칼럼] 새해 벽두에 다시 읽는 신화, ‘시지프스’
  • 승인 2024.01.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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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미쳤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단 한 번도/ 목숨걸고 도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w.볼튼



새해 벽두에 신화 속 ‘시지프스’를 소환한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시지프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 가장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코린토스를 창건한 왕이다.

시지프스는 어느 날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를 납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시지프스는 딸의 행방을 몰라 답답해 할 아소포스를 찾아간다. 먼저 자신의 도시 경영을 위해 절실한 샘물 보급에 대한 맹세를 받아내고, 그 보답으로 제우스의 만행을 알려준다.

그 일을 알게 된 제우스는 분노한다. “시지프스를 황천으로 보내라”는 명을 내리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시지프스에게 보낸다. 이미 예견한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오는 길목에 숨어서 기다린다. 죽음의 신은 시지프스의 기습에 제압당하고 지하실에 감금된다.

타나토스가 감금되자 세상에는 죽음이 없어진다. 인간에게 죽음이 사라지자 신들의 업무에는 장애가 생기고, 가장 큰 피해를 본 황천의 신 하데스와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항의한다. 전쟁에서는 병사들이 죽지 않았고, 전쟁터에서는 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거기다 이 여파로 운명의 여신들의 임무도 방해를 받아 일이 없어져 제우스를 향한 여신들의 항의까지 이어지게 된다. 평범한 한 인간의 행동이 순식간에 신들의 영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결국 제우스는 아레스를 보내서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하고, 시지프스는 저승으로 가게 된다. 시지프스는 저승으로 가기 전 미리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절대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부탁한다. 그후 저승으로 간 시지프스는 황천의 신을 만나게 되고 간청한다.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올리는 청은 간곡하다. “신이시여! 지금 나는 아내가 장례식도 치러주지 않아서 주검 없는 정령만 올라와 있사옵니다. 부탁드리옵건데 장례를 치르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짓 눈물까지 흘리면서 부탁하는 시지프스의 간절한 요청에 하데스는 감응한다. 하데스는 “시지프스는 다시 지상으로 가서 장례를 치르라. 그리고 시신을 내버려 둔 아내를 벌하고 오라”고 명하며 시지프스를 지상으로 돌려 보낸다.

당연히 시지프스는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상에 눌러앉아 천수를 누린다. 이렇게 시지프스는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안녕을 다 누린 다음, 다시 저승으로 가서 벌을 받는다. 신들을 기만한 시지프스에게 내려진 죄는 큰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벌이다. 크고 둥근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산 정상으로 올려놓았는가 싶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떨어졌다. 영원한 노동이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었다.

시지프스는 영원불멸 천하무적이라는 신들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고, 죽음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신화 속 한 등장인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응전을 가르쳐주는 ‘시지프스 요법’을 탄생시켰다. 실패한 사람을 일어서게 하는 스승이었다. 절망의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언어였고 말씀이었고 기도였다.

그리스 신화를 쓴 작가 곁에는 분명 시지프스를 닮은 사람, ‘시지프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지프스’가 지금의 한국사회를 돌아본다면 뭐라고 할까?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쉽게 버린다. 특히 대중 사랑과 주목을 받는 공인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공인들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심리 상태’에 주목한다.

“대중의 관심, 인기, 주목은 마냥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극단적 선택과 죽음은 자살 고위험군에 있는 일반인들의 극단 선택과 대중의 집단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 곁에 그의 말을 조용히 들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을 상기하면서 오늘은 친구들의 말벗이 되어 신화 속 멋진 사내 ‘시지프스’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친구야, 새해에는 더 많은 좋은 일들이 너를 찾아가길 기원해. 너는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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