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1) 호일당 이야기, 마음 비우고 날마다 새로이…이것이 진정 ‘좋은 날’ 아닌가
[호일당에서] (1) 호일당 이야기, 마음 비우고 날마다 새로이…이것이 진정 ‘좋은 날’ 아닌가
  • 윤덕우
  • 승인 2024.01.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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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호 전체 이름 ‘일신호일당’
‘일신우일신’ + ‘일일시호일’
소모적인 집착·욕심 버리면
날마다 새롭게 보낼 수 있어
과거나 미래에 마음 두지 말고
하루하루 가난한 마음으로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과 사람
모든 것을 가르침으로 삼자
고향집겨울풍경
필자의 시골 고향집 ‘호일당’의 겨울 풍경.
 
호일당 현판1
디딜방앗간을 개조해 만든 서재에 걸린 ‘호일당’ 현판

‘호일당(好日堂)’의 ‘호일’은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의미다. 33년 근무한 직장을 퇴직한 필자가 1년 만에 다시 신문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호일당에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래서 왜 ‘호일당’이란 이름을 달았는지, 호일당은 어떤 집인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호일당’은 필자의 시골 고향집의 이름, 즉 당호(堂號)이다. 이 시골집은 대구 팔공산의 한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대구와 접경지역에 있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경북(칠곡군 동명면)에 속한다. 몇 년 전 마련한 농가다. 퇴직을 몇 년 앞두고 평소 원하던 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오래 전부터 퇴직 후 고향에 가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을 해왔다.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대구로 가족이 이사를 한 이후 대구에서 줄곧 살아왔다. 이전 직장에 근무할 때 대전과 포항에서 잠시 생활한 시기를 빼고는.

고향 시골집인 호일당은 필자의 큰집이었다. 필자가 어릴 때 백부모와 6명의 자녀들이 함께 살던 집이다. 할머니도 함께 살았다. 큰어머니가 이 집에서 마지막까지 오랫동안 혼자 살다가 연로해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면서, 사촌 형님이 있는 대구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시골집을 오가던 사촌 형님이 집을 계속 비워둘 수 없어 결국 집을 내놓게 되었는데, 운 좋게 필자가 그 주인이 되게 된 것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기 3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 필자는 이후 큰집 옆집에서 살면서, 큰집을 오가며 큰집 식구들과 한 식구처럼 생활하면서 성장했다. 밥도 큰집에서 자주 먹었고, 농사일도 함께 많이 했다. 그러니 호일당은 어릴 시절을 보낸 나의 고향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공간이다. 한동안 방치하다시피한 집이라 지붕과 담장 등 필요한 최소한의 수리와 정리를 마친 후 어머니가 살게 되었다. 필자는 대구 아파트와 이 시골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호일당’이라 이름 지은 뜻

호일당의 ‘호일’은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의미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서 가져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애용하는 글귀이다.

중국 당나라의 대표적 선사인 운문(雲門) 문언(文偃·864~949) 스님이 어느 달 15일에 법문을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5일 이전의 일은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스로 “날마다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라고 말했다.

운문 선사가 말한 ‘날마다 좋은 날’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 즉 부처의 경지를 표현한 것 같다. 여기에서 유래한 ‘날마다 좋은 날’은 누구나 원하는 바다. ‘호일당’도 날마다 ‘호일’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당호를 지은 후 현판을 하나 만들어 달고 싶어, 작가인 친구(차정보)에게 부탁했다. 친구가 만들어 준 현판에는 ‘호일당(好日堂)’이라는 한자 글씨와 함께, 따로 낙관 형태로 들어가 있는 문구가 있다. ‘일신(日新)’이다.

그러니 필자가 지은 당호의 전체 이름은 ‘일신호일당(日新好日堂)’이다. 이 말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과 ‘일일시호일’을 합해 만든 문구다. 현판은 중 ‘호일당’은 작가 자신이 쓴 붓글씨를 철판으로 따낸 것을 나무판에 고정하고, ‘일신’ 부분은 나무판 중앙에 낙관처럼 네모 테두리 안에 작은 글씨로 새기고 붉은 칠을 했다. 그 덕분에 마음에 드는 멋진 현판 작품을 걸 수 있었다.

‘나날이 새롭다’는 의미의 ‘일신우일신’ 유래는 중국 상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이 자신의 세숫대야에 새긴 다음의 글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이상적인 군주로 꼽히는 탕왕은 자신의 마음을 항상 돌아보기 위해 매일 수시로 사용하는 대야에 이 글귀를 새겨 놓았던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려면 날마다 새로우면 된다고 보았다. 날마다 새롭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날마다 언제나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날마다 새롭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지금 고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고민해도 소용없는 과거와 미래의 일을 마음에 두지 말고 빈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날마다 그런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일신호일당’으로 당호를 만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사는가.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발명품이나 멋진 예술 작품 등을 탄생시키기 위한 고민이 아닌,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집착이나 욕심, 감정만 줄여도 ‘좋은 날’을 훨씬 많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이고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라고 한다. 이 ‘날마다 새로운 마음’은 ‘평상심’이이나 ‘가난한 마음’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평상심’은 허공처럼 텅 비어 조작이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취하고 버림도 없고, 속됨과 성스러움도 없는 마음이다. ‘가난한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런 선시(禪詩)가 있다. 중국 남송의 선승인 무문(無門) 혜개(慧開) 스님이 남긴 작품이다.

‘봄에는 온갖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달 밝으며(春有百花秋有月)/ 여름엔 시원한 바람 불고 겨울엔 눈 내리네(夏有凉風冬有雪)/ 쓸데없는 생각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若無閑事掛心頭)/ 그때가 바로 인생의 좋은 시절이라네(便是人間好時節)’

이런 선시도 있다.

‘흐르는 물이 산 아래로 내려감은 별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고(流水下山非有意)/ 구름이 골짜기로 흘러드는 것도 본래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네(片雲歸洞本無心)/ 우리 인간의 삶도 구름이나 물과 같음을 깨닫는다면(人生若得如雲水)/ 무쇠나무에 꽃 피어 온 천지에 봄이 가득하리(鐵樹開花遍界春)’

‘옳으니 그르니 다 부질 없는 일(是是非非都不關)/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스스로 한가하네(山山水水任自閑)/ 서방 극락세계 어디냐고 묻지를 말게(莫問西天安養國)/ 흰 구름 걷히는 곳이 바로 청산인 것을(白雲斷處有靑山)’

이런 경지를 추구하며 ‘평상심’ ‘가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호일당’이다. 마음을 수시로 챙기며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의 변화나 사람의 언행, 책 읽고 차 마시는 등 모든 것을 가르침으로 삼을 생각이다.

◇1951년에 지은 호일당

시골집 호일당은 단기 4284년(1951년) 3월(음력)에 지어진 농가이다. 4칸 한옥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위채는 남향 건물이고, 아래채는 동향이다.

처음에 초가로 지어진 이 집의 위채는 중앙에 마루, 그 양쪽에 방, 서쪽 방 옆에 부엌이 있는 구조다. 아래채는 남쪽부터 부엌이 딸린 방 두 개, 마구간, 디딜방앗간으로 구성돼 있었다. 방앗간 옆 처마 아래는 뒤주였다.

그리고 위채 북편에는 뒤뜰이 있고, 앞에는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샘이 있다. 마당 남쪽에 감나무 한 그루와 헛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호일당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 40여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 시골집이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새롭게 시골 고향살이를 하면서, 1959년생 한국인으로서 그동안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쳐볼 생각이다.

여러 가지 채소가 자라는 텃밭을 땀 흘리며 일구면서 보고 느끼는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눈 내리는 날 차를 마시며 느끼는 그 정취를 담아보기도 할 것이다.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일기도 하고, 뒤뜰에 피어난 국화를 보며 거닐기도 할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미술 작품이 있는 도록을 펼치기도 하고, 청명한 날이면 거문고를 연주하며 옛 선비들이 거문고를 사랑한 뜻을 생각해보기도 할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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