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불안한 잠
[좋은 시를 찾아서] 불안한 잠
  • 승인 2024.01.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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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덕 시인

나는 장미를 따라 계속 올라갔고 발톱은 뚝뚝 부러졌다

먹고살려면 발목까지 내어주고 좀 더 올라가면 좋겠다고 묻지도 않은 말에 혼자 중얼거리며 발목이 줄어드는 속도로 비틀거렸다

여름보다 장미가 많아 우리에겐 많은 봄이 필요하지 않거든

무릎에 앉아 푹 쉬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늦잠 자기에 좋은 날 같거든

툭툭 터지는 붉은 잔소리가 얼굴에 가득한 당신,

잠이 부족한 것만큼 꽃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계단에 관해 생각했다 한 잎씩 견고히 포개져있다 바람이 한 송이씩 떨굴 때마다

발목이 조금씩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나는 무너진다 계단을 의자로 사용하면 달콤한 냄새가 난다

나는 벌레 먹지 않고 잘 피어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손톱으로 누르며 유언처럼

물속에서 출발한 계단은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고 썼다

여름의 끝에는 늘 장미가 있고 계단은 가시처럼 위태롭고 손바닥에 그려진 지도를 만지작거리며

여름날은 혼자 여행가기에 좋은 날 같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계단의 끝은 없고

보이지 않는 나를 바닥에 쏟아내고 싶었다

■약력: 2006년 <머니투데이>경제신춘문예, ▶201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해설: 불안한 잠을 시인은 왜 하필이면 장미를 통해 이야기하는 걸까? 줄기를 뻗으면서 일과 잎 사이 생겨나는 가시를 밟고 올라야 할 계단으로 보는 시인은, 피었다가 지는 장미의 꽃잎을 부러진 손톱으로 환치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하루쯤 이유 없이 다니던 직장을 결근하고 쉬고 싶은 가장의 심정이, 툭툭 터지는 붉은 잔소리가 얼굴에 가득한 당신이 떠올려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꿈꾸어본 여행은 손바닥에 그려진 지도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여름은 끝나고 만다. 더 높은 계단은 끝이 없고, "보이지 않는 나를 바닥에 쏟아내고 싶었다."는 아주 솔직한 심정 아닐까? 시인에게 그러니까 잠이 불안한 이유는 어떤 보이지 않는 가장으로서의 짐에 무게 때문일 것이다.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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