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 속에 피는 꽃 부겐베리아
모래바람 속에 피는 꽃 부겐베리아
  • 여인호
  • 승인 2024.0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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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해돋이 구경을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해외의 유명한 곳에서 해돋이를 보는 관광상품까지 선보이기도 한다. 관광상품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카이로에서 3년간 살면서 해외에서 해돋이를 경험하였다.

카이로한국학교가 흙사막이었던 신도시에 세워진 터라 학교 옥상에 올라서면 인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주변에 가려주는 숲이 없어서인지 해가 더 크게 보이곤 했다. 학교 옥상 위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해넘이는 교원만이 갖는 색다른 맛이다. 해돋이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해넘이다.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 쪽의 선셋 투어나 세계 유명한 항구의 선셋 크루즈가 아니더라도 흙사막 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는 것도 이국적이다.

식물이 없는 원초적인 땅 위로 태양이 지는 모습은 서산을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해질녘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의 행렬 사진은 장관이다. 카이로에서는 해질녘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모습을 실제 볼 수는 없지만 기자 피라미드 옆에 서 있는 낙타는 볼 수 있다.

낙타는 걷기를 망각한 채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손님을 태워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거듭된 앉았다 일어서기로 낙타는 무릎에 징이 박혔고 가쁜 숨을 내쉬며 콧물을 흘린다. 모래사막을 걸어가는 카라반의 낙타도 고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낙타와 달리 노을을 배경으로 한 낙타의 실루엣은 매력적인 피사체이다. 그 옆의 쿠푸 피라미드는 토핑(고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기자지역 가장 큰 피라미드인 쿠푸 피라미드에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쿠푸 피라미드의 시조격인 다슈르, 사카라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한 노을도 장관이다. 그중 황량한 허허벌판의 다슈르의 붉은 피라미드는 노을과 잘 어울리는 피라미드이다.

사막 한가운데 인류의 걸작품인 피라미드는 민초들이 만든 파라오의 무덤이다. 우리나라의 천마총이나 무령왕릉 내부처럼 석실이라는 칠흑 같은 어둠 속 공간에 파라오는 묻힌다. 피라미드가 서쪽에 자리하는 것은 시작을 알리는 동쪽과 달리 끝을 알리는 곳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경주 대릉원, 공주 무령왕릉, 대구 가까이 불로동 고분군 등 죽음의 공간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해넘이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엄숙함이 느껴진다.

노을을 따라 스며드는 땅거미 사이로 반짝이는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는 금호강변 풍경이나 무령왕릉 너머 하늘을 배경을 삼은 땅거미의 검푸른 빛을 잊을 수가 없다. 노을도 아름답지만 노을에 이어지는 땅거미가 장관이다. 삼종기도나 아잔소리처럼 땅거미는 어둠을 알린다. 여명이 아침의 시작이라면 땅거미는 밤의 시작이다. 낮과 다른 일상이 시작된다.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장면처럼 귀가한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시작할 수도 있고 이문세의 노랫말처럼 아이는 빨간 내복을 입은 채잠들고 한잔 술로 행복해진 아빠의 늦은 귀가를 바느질하며 아내가 맞이할 수도 있다.

정겨운 가족의 모습은 이집트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 명절처럼 라마단 금식월기간에 일가들이 모여 밤새 이야기하는 풍경들을 보기도 했고 카이로에서 힘들게 혼자 살면서 돈을 벌어 가난한 시골 형제자매에게 보내주는 모습도 봤다. 저출산으로 형제애가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명이 발달한 곳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바로셀로나, 찰츠부르크, 북유럽, 오세아니아주 등을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집트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도 의미가 있다. 이집트는 사막바람이 불어 힘들 것 같지만 카이로 주변이 도시화가 되면서 많은 면적이 시멘트로 덮혀 카이로에는 모래바람 양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 또, 과거 봄날 50일 이상 모래바람이 불어서 캄신(이집트어로 50이라는 뜻)이라고 붙여진 이름과 달리 요즘은 며칠간만 캄신이 분다.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에도 꽃이 핀다. 선인장이 대표적일 것이다. 카이로는 흙사막이지만 나일강의 수자원으로 선인장뿐만 아니라 란타나, 봉황목, 플루메리아, 자카란다, 부겐베리아 등 난대성 꽃이 사시사철 핀다. 그 중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부겐베리아는 모래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피는 꽃이다. 부겐베리아는 줄기가 울타리를 타고 넘어와 꽃비를 뿌릴 때가 절정이다. 꽃의 포엽이 흙먼지 덮인 지저분한 카이로 거리를 깨끗하게 만든다. 우리가 부겐베리아 꽃으로 생각하는 꽃잎은 포엽이고 실제 꽃잎은 포엽 가운데 아주 작은 흰색 별과 같은 것이다. 꽃만큼이나 포엽이 아름답다. 어쩌면 꽃보다 포엽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연분홍, 주황색의 화려한 포엽은 꽃상여나 사찰 불단을 장식한 종이꽃이 한 잎 한 잎 떨어진 것 같고 하얀색 포엽은 수수한 한지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격자무늬 문에 바르던 문종이 같은 질감이다. 창호지로 사용한 한지를 문종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지는 우리 전통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겨울이 오기 전 햇살 좋은 가을날 어머니는 문살에 붙은 헌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를 붙이시며 겨울을 날 준비를 하셨다. 어머니는 새 창호지 사이에 단풍잎을 끼워 넣으셨다. 자다 일어나서 달빛에 비치는 나뭇잎을 보면 어린 눈에 신기하였다. 힘겹게 남아 있는 단풍잎을 볼 때마다 창호지를 바르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주름 하나 잡히지 않게 팽팽하게 창호지를 바르고 입에 머금었던 물을 창호지 위에 뿜어 마무리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하더라도 가족을 위한 엄마의 영원한 사랑은 달라지지 않는다. 부겐베리아처럼 정갈하셨던 어머니를 이제 뵐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새해 아침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올 한해 모두에게 화목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손병철 <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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