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어차이면 안다
옆구리 찌그러지고 생입 터져 내장 쏟아 보면
세상에 몸 하나 충실히 산다는 거
입신 갖추고 행세하기 어려운 줄 안다
깡그리 깡다구 심지어 깡패처럼
왜 깡통인지 안다
모나면 다칠세라 둥글게 깎아 세우는 데 십 년
틈이 있어 바람 들까 가려 막는 데 십 년
남이 몰라줄까 꽃단장 두르는 데 십 년
구르는 곰 재주보다 긴 세월이지만
정작 필요한 건 알맹인지라
세상 사람들 용하게 속엣것만 파내간다
나비 떠난 허물처럼 길바닥에 버려져
바람이나 들여 둥지나 틀고
일그러진 밤길 같은 동굴놀이에 지쳐보면
안다, 세 살배기 발길에도 와지끈 구겨질 때
된통 꼴통 혹은 먹통처럼
왜 내가 깡통인지 안다
◇권용욱= 경북 경주 출생. 2016년 <포엠포엠> 등단. <시작나무> 동인 전)부산작가회의 사무처장. 시집 『작곡 이전의 노래』가 있음.
<해설> “걷어 차이면 안다”는, 깡통의 말이다. 내용물을 변질 없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깡통이라는 매개물은 하찮음의 상징이면서도 용도 측면에서는 무시될 수 없는 나름의 유용성을 갖고 있다. 시인들이 깡통을 왜 시로 쓰는지, 깡통을 다루는 시각이 어떻게 변천을 거듭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깡통은 시인 자신이고 그런 깡통의 입장에서 세상을 향한 일갈을 쏟아내는 이 시 깡통은 세상을 입신 갖추고 행세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비관적으로 노래한다. 알맹이를 위해 살았지만 결국 알맹이를 빼앗겨 버리는 게 깡통의 운명? 그렇게 찌그러짐을 통해 존재의 허무를 잘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