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 아웃] 본 것만 보았다고 말하기
[백정우의 줌인 아웃] 본 것만 보았다고 말하기
  • 백정우
  • 승인 2024.01.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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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토냐
영화 ‘아이, 토냐’ 스틸컷.

영화 ‘아이, 토냐’는 이렇게 시작한다. ‘직설적이고 반박의 여지 가득한 토냐 하딩과 제프 길룰리의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함.’ 주목할 대목은 토냐 하딩과 제프 길룰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도 아닌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고 ‘실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 점프에 성공한 스타에서 국민밉상으로 추락한 토냐 하딩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보이겠다는 감독의 결기가 보인다.

영화가 말하는 것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가 아니다. 어떤 매체의 인터뷰에서도 다루지 않았던(혹은 인터뷰를 했으나 고의로 빼버린) 인간 토냐의 진술이다. 스케이팅에 재능을 보인 여자아이가 어린 나이에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미국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짧은 영광과 긴 시련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묘사하는 영화에서 상승과 추락의 과정보다 눈을 사로잡는 건 알권리를 내세워 토냐를 먹잇감으로 던져버린 매체의 행태이다. 때문에 ‘아이, 토냐’를 끌고 가는 건 자기 진실을 해소하려는 토냐 하딩의 필사적 안간힘과 감독의 연출력이다. 제목이 I’m Tonya가 아니고 I, Tonya인 이유, 곧 나 자신과 당신이 알고 있는 토냐 하딩은 다르다는 항변이다.

어려서는 엄마에게 맞았고 자라서는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성이 동료이자 라이벌인 낸시 캐리건 피습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을 때, 건전한 가족을 가지지 못했고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도 실패한 토냐는 어리석은 전 남편과 더 멍청한 남편의 친구(보디가드를 자처한)에게 포박된 채 나락으로 떨어진다.

부득이 언급할 수밖에 없는 ‘아이, 토냐’를 둘러싼 논란. 즉, 이런 유의 영화가 피해가기 힘든 가해자 미화와 사실 왜곡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시작에서 언급했듯이 ‘아이, 토냐’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다.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여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픽션이라는 얘기다. 주요인물의 인터뷰 장면마다 등장하는 4:3 화면 비율은 진술의 신빙성을 촉진하지만, 토냐와 제프의 진술은 대부분 상반되며 토냐 엄마의 진술 또한 믿기 어렵다. 그렇다고 토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 영화의 마지막, 외면하기 힘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한다. 대중은 사랑할 사람과 미워할 사람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임을.

스케이팅 대회 영구 출전금지 판결을 받은 토냐가 생계를 위해 복싱 링에 오르고 불어터진 얼굴위로 상대 주먹이 날아들어 피투성이가 된 입에서 마우스피스가 튕겨져 나갈 때, 뒤이어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 점프에 성공한 한 여성의 화려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교차로 지나갈 때, 권선징악과 사필규정의 환호보다 연민과 한숨이 앞선다. 그 위로 흐르는 노래 Dream a Little Dream of Me.

(추신) 스타의 사생활을 캐내 특종을 잡겠다는 매체의 과도한 경쟁이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강박에 사로잡힌 기자의 비인간적 행위와 인터뷰어의 비신사적 관행의 결과가 특종이라는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해온 동안, 스타들 또한 역공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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