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즈', 바닥이 있기에 하늘이 있고 떨어져 봤기에 오를 수 있다
영화 '라이즈', 바닥이 있기에 하늘이 있고 떨어져 봤기에 오를 수 있다
  • 김민주
  • 승인 2024.01.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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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부터 발레리나로 살아오다
하루아침에 사랑과 꿈 다 잃어
파리를 떠나 새 인연 만들며
현대무용 만나 인생 터닝포인트
청춘의 성장 과정 진부한 주제
‘춤’이라는 화법으로 특색 살려
발레·현대무용에 힙합까지
티켓 하나로 다양한 공연 직관
다시-영화-라이즈
 

'삶이 주는 모든 기회를 만끽해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무너지고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길을 찾아가면 되고 이 길이 아니라면 새로운 다른 길로 들어서도 된다. 실수에서도 배움을 얻기 마련이다. 인생이라는 건 정해진 정답 따윈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딪히며 성장한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영화 '라이즈'는 위로를 건넨다.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발레리나인 엘리즈(마리옹 바르보)는 지금까지 일도 사랑도 늘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엄마 손에 이끌려 6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이래 엘리즈의 인생에 발레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집에서 거리가 먼 발레 학원도 본인이 원했기에 열심히 다니며 연습했다. 마침내 그녀는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했다. 26살 젊은 나이에 '라 바야데르'(La Bayadere, '백조의 호수', '지젤'의 군무와 함께 백색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 주연으로 첫 무대를 앞두고 있다.

이 무대만 잘 소화하면 그녀는 더더욱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공연이 열리는 날,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하필이면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같은 발레단의 발레리노이자 남자친구인 줄리앙이 다른 발레리나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했다. 집중력이 깨져버린 탓인지 점프 동작을 하다 발목을 접질리면서 무대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내려온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사랑과 꿈을 동시에 잃어버렸다.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사고 이후 열심히 재활에 매진하지만 당장 얼마 후 있을 공연조차 설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병원에서는 제대로 쉬지 않으면 수술 밖에 답이 없고, 수술을 한다면 발레는 접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듣게 된다. 지금까지 발레에 그 많은 시간을 바쳤는데 모든 게 다 헛수고가 돼버렸다. 발레 무용수로서의 인생을 반대했던 아버지와도 크게 트러블을 겪는다. 발레 말고는 어떤 것으로 삶을 채워야 할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엘리즈는 무기력한 마음을 떨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단 파리를 떠나 보기로 한다.  

친구를 따라 근교 브르타뉴로 떠난 엘리즈는 예술가들을 위한 한 레지던스에서 케이터링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시작하고 레지던스에 머무르는 현대무용단의 자유분방한 춤사위에 마음이 움직인다. 잠시 날개가 꺾였던 엘리즈는 서서히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아 변화하기 시작한다.

17일 개봉한 영화 '라이즈'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썸원 썸웨어'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은 프랑스 영화는 어렵다는 편견을 뒤엎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국내 관객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해 온 감독이다.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신작 '라이즈'에서는 청춘의 성장 과정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좌절해선 안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만 놓고 보면 사실상 진부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이다. 다만 이러한 관념을 '춤'이라는 화법으로 전달하면서 감독의 특색이 드러난 매력적인 영화로 완성됐다.

또한 희망적인 무용 영화라는 점이 매력을 더한다. 그동안 영화계에서 걸작으로 칭송받는 무용 영화들의 대부분은 그 분위기가 상당히 우울하다. 무용은 곧 '완벽주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파고든다. 영화에서 주인공 엘리즈의 동선은 완벽하고 이상주의적인 고전 무용에서 자유분방하고 표현주의적인 현대 무용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엘리즈가 대하는 '바닥'에 빗대어 예술과 인간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리즈는 극의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바닥을 대하는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 발레는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하는 자세가 준비 자세이며 동작도 마치 하늘에 닿는 듯한 점프가 많다. 반면에 엘리즈가 처음 현대 무용을 만나는 장면을 보면 그 안무가 죽은 척하며 바닥에서 질질 끌려다니는 동작이다. 현대 무용은 바닥을 일종의 표현 수단이자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엘리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마저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고, 완벽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세계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발레에서 현대무용으로 전향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고전 무용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는다는 점 또한 훌륭하다. 영화의 세팅만 보면 자칫 잘못하면 완벽주의와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발레를 비판하기만 하고 끝나버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현대무용수들의 앞에서 발레의 고전주의적 형식미를 강조하는 장면을 넣어 각 무용의 장르별로 지니는 강점이 다르다는 점을 어필하고 고전 예술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엘리즈의 마지막 장면 독무에서는 발레의 기본기를 바탕에 둔 현대 무용 안무를 선보이는데 그 속에 응축된 엘리즈의 시간을 함께 따라온 관객들은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영화 ‘라이즈’ 스틸컷. ㈜무비다이브 제공

발레와 현대무용, 힙합까지 티켓 하나 값으로 다양한 공연을 직관한 느낌이다. 영화의 주인공 엘리즈역을 맡은 배우 마리옹 바르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인 파리 오페라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발레리나에서 배우로 변신한 그는 발레부터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안무를 정확하게 소화한다. 미세한 떨림까지도 예술적으로 연기한 그는 데뷔작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2023년 세자르 영화상과 뤼미에르 영화상에 동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평단과 대중이 모두 인정하는 세계 최정상의 현대무용가 호페쉬 쉑터가 영화의 전반적인 안무 디렉팅을 맡았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의 감각적인 오프닝을 만들며 영상매체 도전에도 성공한 그는 '라이즈'에서 엘리즈의 안무 선생님으로 등장해 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제작진도 힘을 합쳤다. 그들의 주무기는 영화 속 풍경이 당장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시각 효과이다. 영화 내내 화려한 불빛이 수 놓인 파리의 풍경이 눈부시게 빛이 난다. 또한 무용가들의 댄스 장면을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여주며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라이즈'는 표면적으로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의 사적인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방황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던져보았을 본질적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나도 나의 전부를 잃는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사실 영화 속 엘리즈의 상황은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26세에 찾아온 시련은 작은 해프닝일 뿐이다.

실패는 어쩌면 인생 2막을 열게 될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방황하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 다시 일어나면 된다. 바닥이 있기에 하늘이 있고, 떨어져 봤기에 라이즈(Rise) 할 수 있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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