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꼬리 자르기
[좋은 시를 찾아서] 꼬리 자르기
  • 승인 2024.01.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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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갑분시인
원갑분 시인

사랑할 줄 모르는군요

슬픈 일이에요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을 본 적 있어요

잘린 꼬리는 평생 한 번 자란데요

낡은 인조가죽 소파처럼 늙은 엄마가

돌아와

종종 꼬리를 잘라 요리해요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연습이에요

요리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쯤 도망갈 준비가 된 것도 같은데

비법을 말해주지 않아요

뜨거워지는 일은 쉽지만은 않겠죠

가파른 언덕을 넘어

어디로 넘쳐야 할지 모를 때 입을 막고

다시 삼켜요

울음이라는 거, 기어이 다시 삼킬 수 있는 거죠

한평생을 토막 낸 도마뱀

사랑 이야기는 더는 않기로 하고

나귀 타는 원시마을로 가요

고백하는 밤이 올지도 모르죠

◇원갑분= 충북 제천 출생. 2017년 월간 『모던포엠』 등단. 시인촌 동인. 모던포엠작가회원. 2020년 월간 ‘모던포엠’ 우수작품상. 공저 ‘흔적 하나 남겨두고’, 동인 작품집 외 다수. 모던포엠작가회 20선집 ‘작가의 무기들’이 있음.

<해설> 자신의 꼬리를 스스로 자른다는 것은, 어떤 비장함이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을 본 적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잘린 꼬리는 평생 한 번은 자란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와 종종 꼬리를 잘라 요리를 하신다. 엄마의 꼬리는 어쩌면 자식일 수도 있는데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연습이라니, 맛있는 그러나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요리 앞에서 시인은 어디로 넘쳐야 할지 모를 때 입을 막고 다시 삼키는 행위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또 반문한다. 울음이라는 거, 기어이 다시 삼킬 수 있는 거죠? 아마도 어머니에게서 달아난 그 도마뱀은? 효심 지극한 딸에게는 깊은 상흔이며 시를 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원시마을의 나귀도 마실 샘물은 아닐까. 돌담 속으로 달아나는 도마뱀 꼬리를 잡아당기다가 내게 꼬리 잘린 제천의 도마뱀들은 잘살고 있을까.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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