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통제감
[달구벌아침] 통제감
  • 승인 2024.01.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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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한 성공학 강사가 "매일 자신의 방이나, 생활 공간을 청소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 삶을 통제함으로 자존감이 상승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사람의 자존감이 올라갈 때는 자기가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을 때다. 자기의 힘으로 무언가를 통제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능감을 느낄 것이고, 나아가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통제감이 생긴다. 내 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고,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이 생기면서 사람은 자존감이 올라간다. 가령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내 뜻대로 안 되고, 생각도 안 될 때, 자존감이 하락하지만 내가 생각한 대로 그림이 그려진다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통제감이 올라가면 자존감은 올라가게 되고, 통제감이 내려가면 자존감은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통제감'이다.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이 많다. 어떻게 보면 그 옷 때문에 나의 자존감이 내려가는지 모른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통제감 상실 때문이다. 내가 옷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옷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꼴이다. 사실 옷은 몇 벌이면 충분하다. 그 몇 벌을 가지고 갈아입고, 세탁하고, 낡아서 입지 못하면 버리고 새 옷을 사면 된다. 계절 별로 몇 벌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한번 입지 않고,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옷이 너무 많다. 모두 '다음에 입겠지' 하고 미련 떨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옷을 하나씩 펼쳐놓고 보니 모두 깨끗하고, 입을 수 있는 옷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과감히 결정해야 했다. 최소한 3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으면 결국 안 입는 것이라 보고 과감히 옷을 정리했다. 그 결과 집안이 한결 넓어졌다. 덩달아 내 맘에도 여유가 생겼다.
탄력받아서 마당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당에 있던 것 중, 가장 먼저 정리한 건 우리 집에서 9년 키운 개 '달자'였다. 달자는 마당이 좁아서 늘 길지 않은 줄에 묶여 있는 신세였다. 늘 미안했다. 산책시키는 일도 바쁘단 핑계로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묶여 있다 보니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순하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집을 찾아온 손님들을 물려고 했다. 혹시나 목줄이 풀려서 '사람을 다치게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우리 집 마당보다 더 훨씬 넓은 곳, 산책도 더 자주 시켜 줄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한 번씩 소식 듣는데 마당이 넓고, 목줄이 길어서 너무 행복해한다고 했다. 진작 입양 보낼 걸 싶은 후회가 들었다. 탄력받아서 닭도 정리했다. 닭 역시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가진 욕심 탓으로 좁은 닭장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전부터 닭을 키우고 싶어 하는 친한 동생에게 분양했다. 이렇게 마당에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씩 줄면서 마음이 한결 편하고 여유가 생겼다. 또한 무얼 만들어 봐야지 하며 가져다 놓았던 나무 파렛트도 정리했고, 감나무, 목련 나무의 가지도 깔끔히 정리했다.정리하고 나니깐 너무 마음이 편해졌다.
최근 들어 또 하나의 큰 정리를 하고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정리다. 입지도 않으면서 다음에 입겠지 하며 처박아 두었던 옷처럼, 5년, 10년이 지나도 소식 한번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 연락처 안에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모두 다음에 쓰임이 있겠지 하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있었던 탓이다. 나중에 어떤 인연이 되겠지 하고 쟁여놓았던 그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에게는 아주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자주 만나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와 결이 맞지 않고, 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도 최근 들어 정리하고 있다. 원치 않는 만남에 여기저기 불려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생산적인 만남이 아니라, 소비적인 만남이라 판단되면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입을 옷이 몇 벌이면 충분하듯이, 내 삶에도 마음 맞고, 결이 맞는 사람, 몇이면 충분하다. 내 몸과 내 생각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내 시간과 내 공간, 내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나는 통제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칠 것이고, 나아가 내 삶은 비루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정리할 것이 참으로 많다. 나는 통제감을 가질 것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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