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적응하는 힘
변화에 적응하는 힘
  • 여인호
  • 승인 2024.01.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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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을 멘 아이가 연못가에서 커다란 돌멩이로 얼음을 찍어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아이가 장난치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연못이 얼어서 붕어가 죽을 것 같아 얼음을 깨고 있어요.”

아이의 말을 듣고 연못을 살피니 커다란 주황색 붕어가 보였다.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얼어붙은 듯 보였는데,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있는 걸 보니 다행히 살아 있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면서 학교 안에 있는 작은 연못이 꽁꽁 얼어붙었다.

“돌멩이로 얼음을 계속 깨면 오히려 붕어가 놀라서 스트레스받으니까 그만하렴.”

“연못이 얼면 먹이는 어떻게 줘요?”

아이의 질문을 듣고 순간 멍했다. 우리 학교는 교내에 있는 작은 연못에 여러 마리의 붕어를 키우고 있다. 연못 바로 앞에는 붕어 먹이를 주는 자판기가 있는데, 요일마다 학년별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먹이를 주고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집에 늦게 가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먹이를 어떻게 줄지 선생님도 고민해 볼 테니까 일단 빨리 집에 가렴.”

결국 화제를 돌려 1학년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그날 퇴근 후, 저녁 시간이었다.

낮에 연못을 깨던 아이와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얼어붙은 연못 속 붕어가 궁금해졌다. 12월 중반이면 겨울의 초입인데 앞으로 더 남아있는 강추위 속에서 붕어는 견딜 수 있을지, 그동안 학생들이 주는 먹이에 의존했던 붕어들이 먹이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인터넷으로 추운 겨울 꽁꽁 언 연못이나 호수에서 물고기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검색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울이 되어도 호수나 연못의 바닥이 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물고기는 얼어붙은 호수나 연못의 바닥에 붙어 있다고 한다. 물고기의 경우, 평소 얼어붙지 않는 물에서는 수표면으로 녹아 들어가는 산소를 이용해서 유산소 호흡을 한다. 하지만 수면이 얼어붙고 햇빛이 들지 않아 물속에 있던 조류가 광합성을 못하고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 같은 물질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글리코겐을 분해할 때 알코올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때 붕어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만취 상태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성된 알코올은 물고기의 몸에 남아 있지 않고 아가미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4개월에서 5개월까지 버티면서 꽁꽁 언 물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대신 영양 섭취가 거의 없는 상태라서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얼어붙은 연못 속에서도 붕어가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학교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나면 꼭 자세히 설명해줘야겠다 싶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면 1학년 신입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유치원과 다른 학교라는 낯선 공간과 다른 교육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학교 문화가 얼음장처럼 낯설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빨리 학교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얼음을 깨듯 일방적으로 끌어당겨서는 안 된다. 3월 한 달간 ‘우리들은 1학년’을 배우며 학교생활에 서서히 적응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 안에서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작동할 때까지 말이다. 아이들 스스로 마음의 힘을 기르면 얼음물 속에서도 견디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물고기들처럼 누구보다 씩씩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는 힘은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며 터득해야 하니까.



이수진 <대구교대 대구부설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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