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일당에서] (3) 충재종가 운룡도, 500년 세월 넘어…여의주 움켜쥐고 구름 속을 헤집다
[호일당에서] (3) 충재종가 운룡도, 500년 세월 넘어…여의주 움켜쥐고 구름 속을 헤집다
  • 윤덕우
  • 승인 2024.01.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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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물게 수준 높은 그림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작품 추정
직언하는 신하로 이름 떨친 권벌
당시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듯
인간의 상상이 탄생시킨 동물
신령한 짐승 ‘사령’ 대접 받아
운룡도 속 청룡이 뛰쳐나와
안좋은 기운 휩쓸어 가버리길
운룡도-석경
석경의 운룡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다. 갑(甲)은 오행에서 청색을 상징하고, 진(辰)은 용을 의미하기에 갑진년은 푸른 룡, 즉 청룡의 해다. 그리고 청색은 바닥을 치고 반등해서 기운차게 뻗어 올라가는 기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밝은 해가 솟아오르고, 맑은 물이 용솟음치는 듯한 기운의 해인 청룡의 해를 맞아 개개인은 물론, 지구촌 모든 생명이 활기차게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모두가 용꿈을 꾸고 마음속에 여의주를 하나씩 품어 푸른 용처럼 구름을 뚫고 창공으로 날아올라 마음껏 날아다니길 바라면서, 정말 귀한 용 그림(운룡도)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귀한 인연 덕분에 이 지면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할 수 있게 된 작품이다. 아마도 5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운룡도일 것이다.
 

 

용그림2-충재종택2
봉화 충재종가의 운룡도. 족자 작품인데, 충재 권벌(1478~1548)이 왕으로부터 선물 받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충재종가 소장

◇봉화 충재종가 운룡도

지난해 연말 오랜만에 봉화 충재종가 종손(권용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2024년이 용띠해고 해서, 종가에서 소장해온 용 그림을 기회 있으면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며 연락한다고 했다. 10여 년 전 종가음식 등 취재를 위해 두 번 정도 종가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종손이 필자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며 필자한테만 운룡도 사진을 보내줄 생각이니 한 번 보라고 했다.

메일로 보내온 운룡도를 보니 놀라웠다.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게 보아온 운룡도 중 최고 작품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성 있고 좋은 운룡도를 찾아볼 수 있었으나, 종합적으로 볼 때 충재종가 운룡도가 최고 작품으로 여겨졌다.

이 운룡도(雲龍圖)는 파도 위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는 청룡이 붉은 여의주를 한 발로 움켜잡고 눈길을 약간 옆으로 보내고 있는 그림이다. 500년 정도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먹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채색화이다. 매우 정교하고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느껴지는 이 작품의 수준은 보기 드물게 높아 보였다. 그래서 당시 도화서의 뛰어난 화원이 그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족자로 된 작품인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지가 많이 구겨지고 한쪽에 습기가 스며든 흔적, 족자의 위와 아래 끝 부분에 낡고 삭아 조금씩 찢어진 곳 등이 있지만, 작품 부분은 훼손된 점이 없이 잘 보존되어 온 것 같았다.

푸른 비늘이 매우 촘촘하게 묘사된 이 용은 머리와 네 발, 꼬리 부분, 몸통 부분이 구름과 파도 속에 드러나 있다.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인데, 한 발로 붉은 여의주를 잡고 있다. 그리고 화염문(불꽃 모양의 문양)을 많이 그려 넣은 점도 눈에 띈다.

종손은 이 운룡도가 도화서 작품이고, 충재 권벌(1478~1548)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고 말했다. 크기가 세로194.5㎝·가로156㎝(족자 크기는 248㎝×164㎝)인 이 작품은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그리고 충재 권벌이 벼슬생활을 할 때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권벌은 직언하는 신하로 이름을 떨친 문신으로, 왕(중종)의 총애를 받았다.

현재까지 전하는 옛 운룡도 중 도화서 화원이 그린 운룡도는 매우 드물다. 진귀한 작품으로 생각되는 이 운룡도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상이 남긴 유물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는 종가 사람들의 각별한 정성 덕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운룡도는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가로 추정되는 석경(石敬)이 그린 ‘운룡도’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넘실대는 파도 위 구름 속에 드러난 용의 머리 부분과 여의주를 움켜쥔 앞발 하나를 표현하고 있다. 충재종가 운룡도를 다른 옛 운룡도와 비교하며 살펴보니, 석경의 이 운룡도와 그 분위기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경 운룡도의 파도 모양과 용머리, 여의주를 잡은 발 등 모두가 충재종가의 운룡도 모습을 닮았다. 얼굴이 향하는 방향은 서로 반대이지만 뿔 모양, 코 위의 두 가닥 긴 수염, 코와 입, 입 주변 수염, 눈 모양과 눈길 등이 유사하다. 여의주를 쥐고 있는 발톱의 수도 세 개로 같다.

족자 그림이나 벽화, 도자기 등에 보이는 용 그림을 보면 용의 발톱은 시기별로 세 개, 네 개, 다섯 개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용포 등 왕의 권위를 표현하는 용 그림이 아닌, 일반적인 용 그림이나 도자기의 운룡도 등에서 용의 발가락 수는 15~16세기는 3개, 16∼17세기는 네 개, 18세기 이후에는 다섯 개로 표현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도 충재종가 운룡도는 16세기 초반에 임금으로부터 세화(歲畵)로 선물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도화서 화원으로도 활동한 석경도 이 시기의 화가였다. 용의 영험한 힘을 빌려 나쁜 기운을 예방하는 의미에서 정초에 세화로 운룡도가 많이 그려졌는데, 왕이 신하에게 주는 선물로도 활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의 염원이 담긴 용

용은 인간이 상상으로 탄생시킨,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한 최고 능력자 동물이다. 이런 용은 여러 가지 동물이 각기 지닌 최고의 무기와 특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용은 고대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문명의 발상지 어디에서나 오래 전부터 상상되어온 동물이다. 신화나 전설의 중요한 제재로 등장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도 큰 몫을 차지해왔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민족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기능이 조금씩 달리 파악되어왔다. 우리나라 사람이 생각해온 용은 대체로 중국인이 상상했던 용의 모습과 유사했다.

중국 위나라(220~265)의 학자 장읍(張揖)이 찬술한 자전(字典)인 ‘광아(廣雅)’에 용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목덜미는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의 것과 비슷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여러 짐승들의 장점만을 취하여 최고의 동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용은 봉황(鳳), 기린(麟), 거북(龜)과 더불어 네 가지 신령한 짐승인 ‘사령(四靈)’으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인간 세상 최고의 지배자인 왕에 비유되었다.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 왕의 자리는 용상(龍床), 왕의 옷은 용포(龍袍) 등으로 불리었다.

이런 용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었다. 신수(神獸)로 여겨진 용의 도상은 옛날부터 의복이나 공예품, 그림 등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 용은 운룡도로 많이 그려졌다. 운룡도는 말 그대로 용과 구름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운룡 도상이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운룡 도상이 복식이나 도자기 등에는 물론, 단독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용인 주인공인 운룡도에는 구름과 물결 문양이 함께 하는데,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는 화염문도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는 보배 구슬인 여의주는 용의 입에 물려져 있거나 발로 잡고 있다.

충재종가의 운룡도 속 청룡이 그림 속을 뛰쳐나와 지구촌 곳곳으로 날아다니며 안 좋은 기운을 모두 휩쓸어 가버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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