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영어와 인간관계의 공통점
[문화칼럼] 영어와 인간관계의 공통점
  • 승인 2024.01.3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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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오래전 대학원 졸업을 위해 반짝 영어를 열심히 한 적 있다. 그리고는 긴 세월 필요는 언제나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지 않아 영어에 관한한 까막눈처럼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참 아쉬운 시간들이 많았다. 내가 일하던 공연장을 찾은 많은 대가들과 그들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음에도 통역에 의지해 겉도는 이야기밖에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영어를 하지 못하면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나는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는 지금, 가능하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다. 이런 여행길에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영어는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딸도 영어권 나라에서 살고 있다. 걔가 엄청 싫어할지(설마^^)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처음에야 주변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 도와주겠지만, 결국 구박받지 않으려면 혼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수준에서는 과욕이겠지만, 생존 영어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다다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나름 노력 하고 있는 가운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영어는 해도 잘 늘지 않지만 안하면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다는! 농담 섞인 말이지만 나의 실태를 적절히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영어공부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앞으로 달려간다. 이정도 했으면 뭔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처음 시작할 때 학원교재는 통째로 외웠다. 강사님이 만든 얇은 책이긴 했지만 어렵사리 작은 예문까지 다 외웠다. 그때는 자다가도 입으로 뱉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다 최근 다시 그 책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이런 게 있었어? 의 연속이다. 다른 교재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이렇게 일 년간 하느라 했지만 결국 지금보고 있는 부분의 언저리만 남고 그 뒤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다. 열개의 과정이 있었다면 난이도와 관계없이 언제나 두세 개 정도만 내 부근에서 어른거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과정도 우왕좌왕이다. 꼭 젊은 날 나의 유학시절을 보는 것 같다. 누구나 같은 입장이었겠지만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유학 간 나는 더 마음이 조급했다. 유학 초창기 때 배운 마에스트로께서 나에게 물었다. 나이가 몇이냐? 서른셋입니다. 흠! 예수님은 서른셋에 다 이루었는데…. 그래서 어디에 좋은 선생님이 있다더라. 이런 말에는 내 귀가 얼마나 얇았던지 또 거기로 간다. 그러다 또 선생을 바꾸는 이런 나날이 꽤 길었다. 물론 지금생각해보면 그 시간들도 많은 공부가 되는 것이었지만 마음이 급하다 보니 빨리 승부를 보고 싶어 늘 어딘가 쫓기듯이 한 유학 생활이었다. 요즘 나의 영어공부가 그렇다. 진득하게 한곳을 파는 게 아니라 이것도 해보고 저기에도 기웃거리는 형편이다. 그러다 딸에게 어떤 게 더 좋을지 물어보다 방법은 그만 찾고 그냥해라는 핀잔을 듣는 지경까지 갔다.

AI가 탑재된 스마트폰이 나왔다. 이것만 있으면 아주 여러 나라 사람들과 불편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투자 대비 소득이 아주 적은 나의 형편에서는 또 잡생각이 스며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영어는 앞으로 AI에 맡기고 나는 그럴 시간에 다른 공부나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바람이 슬며시 불어오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 그렇다 하더라도 남는 시간을 그렇게 효율적으로 쓰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통역기를 들이대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스마트폰을 거쳐서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읽기 위해서는 서로 눈을 맞추고 얼굴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해야 할 일이다.

나처럼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또 나름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과가 미흡한 것은 우선은 나의 아둔한 머리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머릿속에 집어넣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릴 나이여서 역시 무리인가? 라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공부에 유리한 나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 말에 상당한 위안을 얻는다. 결국은 반복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할수록 인간관계와 영어는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끊임없이 갈무리 하지 않으면 곧 사라져 버린다. 살면서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인연이 끊어지다시피 된 경우가 너무 많다.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받은 도움은 천근보다 무겁게 생각해야 하건만 당장 급하지 않으면 없는 듯이 또 안개너머에 둔다. 영어공부를 하며 얻은 소득은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이런 분들에 대한 죄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자각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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