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우애(友愛)
[달구벌아침] 우애(友愛)
  • 승인 2024.02.0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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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나이가 들수록 가장 오랜 인간관계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온 가장 오랜 관계가 부모와 형제자매이다. 어릴 때 같이 뛰어놀던 친구, 초중고, 대학교때 함께 다니며 친했던 친구, 하루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동료들이 부모형제보다 더 가깝고 소중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무엇인가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근거지가 달라지고 거리가 멀어지자 연락도 점차 띄엄띄엄하게 되었다. 한 쪽에서 자주 연락을 하거나 서로가 계속 연락을 하거나 해야 이어질 것인데 사는 게 바쁘다보니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사람과 해결해야할 일들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결국 어느 한 사람이 좀더 자주 연락을 하다가 그 한 쪽마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연락이 끊어졌다. 한 해를 넘기고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연락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고 외롭지 않다보면 굳이 다시 연락을 안 하게 되어 두 해가 넘어간다.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연락하자니 오히려 어색하고 할말도 없어 아예 연락할 생각조차 않게 된다. 이제 완전히 끝난 관계처럼 멀어졌다.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친해지다보니 모임을 만들기 시작한 게 3개가 된다. 3달에 한 번 만나 그간 밀린 직장이야기, 동료들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아이학교 엄마들과 연락을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한 게 1개이다. 가까운 동네에 살다보니 만나기가 쉽고 여러명이 함께 만나니 한 사람이 빠져도 다른 사람들은 모여서 모임이 이어진다. 그러나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를일이다. 언젠가는 이들과도 끝이 나겠지. 자연스레 그렇게 될 때까지 최대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램이다. 누군가의 장례식에도 가고, 나의 장례식에도 그들이 왔으면 좋겟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굳이 만나야겠다는 의도적인 노력없이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나다보니 이어진 관계다. 자주는 만나지는 못했다. 부모님 생신. 할머니 제사, 어버이날, 추석과 설날. 친척들 대소사에서 가끔 보는 사이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장례를 함께 치렀다. 홍희의 형제자매는 딱 기본에 충실했다. 더 자주 만나는 형제자매들도 있겠지만 사이가 안 좋아 기본적인 만남조차 않는 형제자매도 있을 것이다. 홍희의 형제자매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홍희가 막내였기에 태어나는 순간 그들이 먼저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같은 사람을 엄마, 아버지라고 불렀다. 나의 엄마, 아버지가 그들의 엄마, 아버지이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나의 고모, 외삼촌이 그들의 고모, 외삼촌이었다. 단지 이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지만 같은 것이 많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쌍둥이 같은 사람이 형제자매이다.

어느사이엔가는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살았다. 학교도 다르고, 직장도 다르고, 새로운 가족을 구성해서 살아가느라 친구보다 더 멀었다. 그런데 지금은 형제자매와 더 가깝다. 부모라는 공동의 존재 때문에 서로의 인연이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다행히 큰 마찰이 없어서 만날 때마다 얼굴 붉히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져 오다보니 50이 넘고 60이 넘었다. 더 자주 보기로 했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더 많이 웃었다. 커피숍을 떠들썩하게 하고,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었다. 같이 술을 따르고 건배도 했다.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아프지 않기를, 아주 오랫동안 계속 볼 수 있기를 서로에게 바랬다.

이제 공동의 존재가 이 세상에 없지만 서로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오래 이어져온 관계. 아직도 같은 사람을 엄마라 부르고, 아버지라 부르는 나와 닮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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