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연어
[좋은 시를 찾아서] 연어
  • 승인 2024.02.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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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균

아버지 직업을 적어오래요

리어카 배추장사라고 쓸까요

아니다 좀 더 있어 보여야 하지 않겠니

행상이라고 쓰렴

다음날 아버지는 귀가하지 않았고

아들은 찾아 나섰다

평리동에서 내당동까지

골목골목 뒤질 때, 도로까지 삐져나온

익숙한 소주 냄새, 아버지는 리어카 안에

시래기처럼 붙어 있었고, 리어카를 끌고 오며

아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노래를 잘 기억한다

다시 찾은 골목은

아버지의 골목이 아니고, 아들은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아니다

골목은 모두 사망한 지 오래

아버지 단골집들은 이삿짐처럼 포개져 있고

트럭 짐칸 널브러진 아버지 앞에

아들 대신 목소리 좋은 확성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들은 아들을 낳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 직업에 시인이라고 쓴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숨이 가빴지만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이석균= 1961년 대구 출생 △2016년 계간 ‘문학 선’ 신인문학상 당선 △계간 ‘문학 선’ 제작 위원 역임.

<해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리어카를 끌며 야채를 팔았다면 아들은 1톤 트럭을 끌고 다니며 야채를 팔고 있다. 해서 아버지는 아들은 낳지 않는다. 딸을 낳은 것이고 그 딸은 아버지의 직업을 시인이라고 쓴다. 이 시의 포인트는 “아들은/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숨이 가빴지만/거기까지였던 것이다”로 뭉클하게 읽히는 것은 왜일까? 떠났던 연어가 돌아온 곳은 여전히 아버지의 자리이긴 한데 그 골목은 아들이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숨이 가빴지만 거기까지였던 골목이다. 골목은 모두 사망한 지 오래된 골목이고 아버지 단골집들은 이삿짐처럼 포개져 있는 그런 골목이어서 배추 장사인 아버지를, 마음이 따듯한 딸은 시인이라고 쓰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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