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튜울립나무라 불러다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튜울립나무라 불러다오
  • 여인호
  • 승인 2024.02.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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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친구가 졸업앨범을 펼치다가 말을 잇지 못하며 당혹해했다. 앨범업자가 앨범 증명사진에 친구 두 명의 이름을 바꿔 붙였다. 전 아무개의 이름을 김00으로 했고, 김00을 전 아무개로 해버렸다. 지금 같으면 앨범을 수거해서 이름표를 다시 붙인 후 배부하는 등 적극적으로 하겠지만 그때는 당사자인 두 친구의 앨범에 이름만 다시 바꿨다. 두 친구와 친하지 않고 이름표가 바뀐 내막을 모르는 나머지 동창들은 원래 친구의 이름을 모른 채 앨범에 붙여진 이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튜울립나무와 백합나무가 이 형국이다.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산그림자가 길게 누운 앞산 자락의 학교 운동장, 그 구석 한쪽에는 백합나무가 있었다. ‘어 학교에 백합나무가 있네’ 생각하며 나무에 다가가서 이름표를 보는데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라고 붙여져 있었다. 표피도 얼룩덜룩 군복 무늬같지 않았고 잎 모양도 가운데가 뾰족하지 않은데 나무이름표에 플라타너스라고 쓰여있었다. 백합나무를 플라타너스로 잘못 붙인 것이다.

영천의 임고초등학교처럼 플라타너스가 과거 학교 운동장에 심어졌던 터라 학교의 아름드리 나무 중에는 플라타너스가 더러 있다. 길안초등학교 한 켠에 하늘 향해 팔을 벌려 서 있는 플라타너스가 있고 양동초등학교는 교목으로 삼기도 했다. 아름드리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거나 고누, 땅따먹기를 했고 나무기둥에 서서 말뚝박기,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교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큰 나무가 플라타너스이다 보니 백합나무를 플라타너스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플라타너스는 교정뿐만 아니라 가로수로도 많이 볼 수 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라고 말한 그 흔한 나무이다. 시인이 노래한 이 나무는 고대 이래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각광받는 가로수이다. 또한, 플라타너스처럼 가로수로 많이 심어진 나무가 백합나무이다. 대구에서도 과거에는 반월당 동아쇼핑 건너편에 있었고 아직도 대구 2호선 만촌역에서 대륜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반면, 만촌역에서 나눠지는 무열대 방향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였다. 한 도시 내 같은 만촌동이라도 이쪽은 플라타너스 저쪽은 백합나무이고 나뭇잎 색깔이나 자라는 모습이 비슷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헷갈릴 수가 있다.

하지만, 플라타너스와 백합나무는 다른 나무다. 플라타너스는 잎 가운데가 뾰족한 반면 백합나무는 오리발 비슷하게 대칭으로 잎모양이 나눠진다. 플라타너스는 나무껍질 표면도 아이 얼굴의 버짐처럼 얼룩덜룩 벗겨진 듯하여 (양)버즘나무라고도 하고 열매가 방울처럼 생겨 방울나무라고도 한다.

학교에서 백합나무 이름표를 플라타너스라고 잘못 붙인 것도 문제이지만 과거 국가기관에서 백합나무라고 이름을 명명한 것부터 문제였다. 백합나무를 생각하면 백합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백합나무에 피는 꽃은 튜울립꽃을 닮았다.

Liriodendron tulipifera이라는 백합나무 학명의 Liri가 백합 Lily의 화려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와 관련이 있어서 백합나무로 명명되었지만 속명에 튤립꽃이 피는 tulipifera를 포함하고 있다. 또, Liriodendron을 위키백과에 검색하면 일본을 제외한 많은 국가에서 튜울립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백합나무라고 부르는 일본식 이름 표기에서 벗어나 튜울립 닮은 꽃이 펴서 튜울립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가생물종목록에는 튜울립나무를 정식 명칭으로 하였다.

다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여전히 백합나무를 정식 이름으로 하고 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튜울립나무의 요구를 대신해서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담당하는 국립수목원에 튜울립나무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튜울립나무로 불러야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이다. 국가에서 이름을 잘못 명명한 경우든 각 기관에서 잘못 이름표를 붙인 경우든 나무이름표를 본 사람들은 그 나무이름표대로 알게 된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화단의 나무이름표를 맞게 붙여주자. 기왕이면 나무 설명도 쉽게 해주자.

활엽교목은 잎이 떨어지는 큰 나무(喬木)라고 설명해주고 상록 침엽은 침같이 가는 나뭇잎이 사계절 푸른 나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나무이름표를 보고 “왜 튜울립나무인가요? 튜울립은 꽃인데? 왜 나무죠?”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막 생기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손병철 <대구교육청 장학관·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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