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창 개인전…윤선 갤러리 내달 3일까지
한무창 개인전…윤선 갤러리 내달 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4.02.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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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성·즉흥성에서 나온 선, 예술의 출발이자 종착지”
색·관념 벗어나 새로운 시각 제시
두께감·무채색 특징은 빛의 효과
보는 맛 다양·해석 여지도 넓어져
붓 아닌 송곳으로 긋는 방식 채택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 ‘새로움’
신작·회화·드로잉 50여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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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창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윤선 갤러리 전시장 전경. 황인옥 기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자발적인 선택이나 외부의 상황에 떠밀린 경우나 변화를 촉발하는 양태는 다를 수 있지만 변화한다는 사실 만큼은 불변의 진리다. 변화의 결과는 기쁨 아니면 고통으로 극명하게 갈릴 수 있지만, 두 경우 공히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 또한 진리다.

윤선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한무창 예술의 현재성은 ‘변화’로 수렴된다. 7년 전 대구미술관 전시에 소개됐던 작품들과 비교하면 변화가 확연하다. 그가 “향후 10년간 매진하게 될 작업”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의 성장통이 지나고 획득한 결과인 듯 했다. 작품 ‘Moment’ 연작인데, 시각적인 변화는 가히 혁명에 가깝다.

‘Moment’는 후미진 구석에 배치해 놓아도 “나 여기 있소!”라며 존재감을 발하던 이전 작업에서의 화려한 색채감을 찾을 수 없다. 색을 절제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화면 곳곳에서 묻어난다. 은색마저 화려해 보일 만큼 색에서 욕망을 단호하게 들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침묵의 백색 앞에서 색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한무창 작가가 윤선 갤러리에 전시된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한무창 작가가 윤선 갤러리에 전시된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10년 주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10년 전에는 화려한 색으로 대변됐다면, 향후 10년은 색의 극단적인 절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20여년 전인 2003년, 색채의 향연을 펼치도록 이끈 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당시 3살이었던 그의 아들이 꽃을 보고 “아빠 꽃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꽃에 대해 세상이 관념적으로 내려놓은 정의로 설명하는 것에 회의가 밀려왔다. 아들의 질문에서 그는 “관념보다 현상이 오히려 더 실체에 가까운데, 세상은 관념이나 지식, 언어로만 이해하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면서 관념의 반대급부로 현상 자체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불태웠고, 그것이 색채의 향연으로 표출됐다. 화려한 색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념이 아닌 실체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의 발로였다. 인간계의 모든 것을 색으로 이해하는 한편, 관념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세태에 대한 꼬집기였다. “모든 것을 개념화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태에선 새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더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선 관념에서 벗어나 다르게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색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그의 시도는 첫 눈을 뜬 신생아의 그것과 일맥상통했다. 신생아가 첫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이다. 그러다 형형색색의 칼라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그의 화려한 색은 흑백에서 색의 세상으로 거듭나려는 신생아의 순수한 열정의 오마주였다. 신생아의 열정이 그의 의식에선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체적인 진실이나 현상들을 이해하려는 열정으로 치환됐다.

이번 전시에선 화려함을 벗고 순수의 색으로 거듭났다. 정확히 10년만의 변화다. 사실 색의 절제는 지난 독일 유학 시절 지속시켰던 호기심의 연장선이었다. 현상계를 탐닉하던 40대의 관심사가 50대로 접어들자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더 본질적인 요소들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아갔고, 독일 유학 시절의 색의 절제에 대한 태도를 심화해 갔다. 순수나 본질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화려한 색채는 걸림돌이 됐다.색의 극단적인 절제였다. “흰색이나 회색 등의 순수한 색으로 회귀한 것은 의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죠.”

캔버스 표면에 두께감이 생기고 무채색 계열이 자리를 잡으면서 두드러진 특징은 빛의 효과다. 빛의 이동에 따라 색과 그림자도 미세하게 이동한다. 보는 맛이 다양해지고, 해석의 여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색의 변화만큼 기법적인 변화도 인상적이다. 물감을 붓으로 매끈하게 칠하던 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올린 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무의식적인 손놀림을 통해 무작위적인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다. 직접 선을 그리는 방식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붓이 아닌 송곳을 들었다. 송곳으로 긋는 방식은 일종의 음각 기법과 유사한데, 때로는 흰색의 표면 아래의 검정, 표면 위의 은색 등을 통해 기운을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그가 두꺼운 표면에 송곳으로 긋는 방식으로 표현한 신작을 ‘인테글리오 페인팅(Intaglio Painting·음각회화)’이라고 명명했다. 한무창 작품의 독특성에 대한 표현이다. 송곳으로 표현한 선들은 빛과 표면 아래나 위의 색들에 의해 형태가 드러난다. 작업은 2012년에 시도했던 드로잉 작업의 확장판이자 심화된 버전이다. “‘인테글리오 페인팅’은 나뭇가지로 땅을 긁어 그림을 그리던 어린 시절의 놀이에서 떠올린 기법입니다.”

송곳으로 무작위로 선을 그었지만 형상은 자연에 가깝다. 의도치 않았지만 본질에 대한 추구가 자연스럽게 자연의 형상으로 드러났다. 무작위적인 행위, 즉 무질서 속에서 얻은 형상이자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가능태였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저 자신조차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질에 좀 더 다가간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을 닮을 선이 더욱 도드라졌습니다.”

변화하는 것이 있으면 지속되는 것도 있다. 변화와 일관성이 맞물리면 저항은 낮아지고, 신뢰는 높아진다. 특히 핵심적인 요소들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면 신뢰는 더욱 공고해진다. 그럴 경우 시각적이거나 기법적인 변화도 저항 없이 수용하게 된다. 한무창은 변화와 일관성이라는 상반된 태도를 동시에 구사한다. 색이나 형태적으로 변화를 모색하지만 핵심 개념에선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것이 ‘선’과 ‘일상 속 찰나’와 ‘우연성’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지상최고의 가치이자 목표는 새로움이다. 이것은 기존의 권위와 관념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한다. 한무창은 일상에서 만나는 찰나의 순간에서 느끼는 감동을 저항의 재료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새로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른바 순간성과 우연성에 의한 ‘일상의 재발견’이자 ‘순간의 감동’이다.

일상 속 찰나의 위대함을 발견한 시기는 독일 유학 때다. 베를린의 한적한 공원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비닐봉지를 무리지어 날고 있는 까마귀 떼로 오인한 사건에서 일상이 주는 새로움을 경험했고, 찰나적으로 지나가는 현상이나 우연적으로 포착한 상황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인지했다.

“제가 미술의 긴 역사에 수용되어 그림으로 표현했을 때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 독일에서 일상의 순간순간 느끼는 감동이 오히려 큰 행복임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가장 본능적인 것이고 원초적인 행복의 순간이었죠.”

‘선(line)’은 긋는 행위의 현실태다. 더 정확히는 찰나의 감동에 대한 현실태다. 물론 점이나 면도 감동의 근간이 될 수 있지만 그는 “점이나 면으로 표현할 경우 작가의 의지를 강도 높게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선을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지난 10여년 간 집중했던 화려한 색채의 작업에서도 선적인 요소들을 유지했다.

하지만 윤선갤러리 신작에선 색채에 가려졌던 선들의 기운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자유를 허용했다. 그는 포괄적이고 함축적이며, 가장 정직하고 솔직하면서 본능적이라는 지점에서 선을 바라본다. 선은 그의 예술의 출발이자 종착지이며, 작가 자신이다.

“선은 제 마음 속의 여러 가지 순간에 대한 표현입니다. 한무창은 평생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함께 한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그의 선들은 우연적인 행위로 위용을 갖춰간다. 물감을 바른 평면에 송곳으로 행하는 즉흥적인 행위들은 우연성의 결집체다. 그 어떤 의도나 관념적인 생각들을 걷어낼 때만 작업이 진행된다. 만약 작가의 의지가 끼어들 경우 작업을 망치기 일쑤. 눈을 감고 선을 긋기도 하는데, 이는 우연성과 즉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다. 그럴 때라야 순수성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행위에서 관념성은 배제되고, 오직 행위 자체의 순수성만 남게 되는 것이다.

“우연성과 즉흥성은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을 덜어낸 상태에서 나오는 태도입니다. 순수한 내면의 상태입니다.” 신작을 포함 50여 점의 회화, 드로잉 작업을 소개하는 윤선 갤러리 한무창 개인전 ‘Moment‘전은 다음달 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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