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아트센터 권기철 개인전, “배설물도 결국 나 자신”…예술로 재탄생한 작업 부산물
달서아트센터 권기철 개인전, “배설물도 결국 나 자신”…예술로 재탄생한 작업 부산물
  • 황인옥
  • 승인 2024.02.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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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즉다 다즉일 표본 ‘一’ 매료
곡선·점·선·면 자유자재 변형
먹→본질·물감→감정 드러내
몸으로 ‘一’ 함축성 구현 위해
붓 대신 ‘구멍 뚫린 먹통’ 사용
“즉흥서 시작해도 필연에 도달”
틀에 남은 물감 덩어리 굳히기
전시명 ‘의미 없는’ 역설적 표현
먹 중심에서 색 위주 작업 선봬
권기철 작가
권기철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달서아트센터에 걸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권기철 작가2
권기철 작. 황인옥기자

화엄경의 요체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것이다. 전체와 개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개체와 전체를 공동운명체로 보는 시각이다. 권기철 작가 작업의 개념적 토대는 화엄경의 ‘일즉다 다즉일’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하나와 전체가 조화된 상태이고, 자신의 세계관과 의미적 유사성으로 주목한 것이 ‘일즉다 다즉일’이었다. 그런 그의 예술세계와 세계관에 대한 시각적인 서술들은 달서아트센터 그의 개인전에 펼쳐져 있다.

“개체와 전체가 독립되어 존재한다는 개별성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합성,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균형을 추구 한다”는 사유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는 추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란한 수식이나 무분별한 사족들로 의미를 흩트리기보다 담백하면서도 강렬한 한 마디를 원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서예의 가장 기본인 ‘한일(一)’자였다.

‘일(一)’은 서예에서 가장 기본적인 획이다. 그 자체로 의미가 명확하지만 수많은 글자에 몸을 빌려주는 확장성을 획득하고 있다. 권기철은 ‘일(一)’의 바로 이 점에 매료됐다. 그에게 ‘일(一)’은 “‘일즉다 다즉일’의 함의”였다. “‘일(一)’은 개체에서 출발해 전체로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즉다 다즉일’의 표본처럼 다가왔어요.”

‘일(一)’이 등장하기 이전, 그의 미술 토대는 음악과 문학이었다. 음악적인 선율을 붓 끝에 싣고 시각적인 리듬으로 치환하거나, 시의 구절을 가슴으로 음미하고 손끝으로 토해냈다. 그러나 음악과 문학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았을 때 관계가 복잡 미묘해 진다. 그가 모티브로 삼은 음악이나 문학을 창작한 작곡가나 문인이라는 존재가 개입된다. 그에게는 그들의 창작물을 재해석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1차 창작이든, 2차 재해석이든, 고도의 정신작용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는 그의 미술이 강한 추상성을 띠는 이유다.

음악과 문학이 주제였던 초기엔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등의 악기를 직접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대개는 추상과 구상이 혼재됐다. 이 시기 그는 점과 선과 면이라는 조형요소부터 화살표나 교정부호 등의 기호까지 아우르며 음악과 문학을 시각화하며 추상의 세계를 확립해갔다. 문학이 개입될 때는 한자와 한글과 영문 등의 문자를 통한 은유적 접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一)’의 등장은 그의 추상이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더 본질적인 세계에 대한 열망이 터지면서 ‘일(一)’과 만났다. 거의 17년 전 쯤의 일이었다. 소리의 근원, 즉 음악의 본류를 찾다 한일(一)자를 만났다. “작업실 등의 작업 환경이 변할 때 작업에도 변화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전체 속의 개체인 까닭에 주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의 추상은 전통수묵화의 공식을 따른다. 개념을 극도로 함축하고, 표현에서도 극강의 은유로 내용적인 함의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깊은 산속 폭포 아래 집을 하나 그렸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자연과 유유자적하는 은둔자의 깊은 정신세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의 추상 또한 서예나 수묵화의 정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一)’와 함께 ‘먹(墨)’도 이 시기에 그가 선택한 물성이다. 5살 무렵부터 모필로 한지 위에 글을 쓰던 부친의 영향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궁핍했던 청소년기에도 서예와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기억이 서예의 ‘일(一)’과 ‘먹’으로 소환됐다.

일(一)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짐작되듯, 출발은 서예다. 그러나 애초에 그는 서예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현대미술의 범주에서 개념에 부합하는 시각적인 요소를 찾던 중에 만난 것이 서예의 ‘일(一)’이었다. ‘일(一)자’에 현대미술의 핵심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시각화했다.

“한일(一)자에는 많은 형상이 포함돼 있으며, 복잡한 형상일 때도 한일(一)자 하나로 돌아갑니다. 일즉다 다즉일이죠.”

먹(墨)과 함께 아크릴 물감도 병행한다. 아크릴 물감과 먹은 물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소통한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역할분담은 있다. 먹이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룬다면, 아크릴 물감은 그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아크릴 물감을 쓸 때는 밝고 경쾌한 색들이 주로 선택된다. 그가 “먹이 모든 색을 품고 있다면 아크릴 물감은 먹이 머금은 색들을 하나하나 펼쳐놓는 용도로 사용했어요. 그래서 다채로운 색들이 표현되는 것이죠.”

밝은 색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부친을 위해 막걸리를 사러 가는 길에 만났던 시골의 순수한 자연과 검정고무신처럼 팍팍했던 삶의 무게가 다채로운 색채에 혼재돼 있다.

그의 작업에서 빠트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몸이다. 그는 손끝이 아닌 몸 전체로 그림을 그린다. 정확히 온몸에 응축된 기운을 찰나적으로 터트린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흡사 꽃이 만개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는 ‘함축’에 대한 그의 소신이 자리한다. ‘일(一)’에 ‘개체와 전체의 조화’라는 철학적인 사유를 표현하는데 있어 그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불필요한 사족을 달기를 원치 않는다. 그가 추구한 것은 ‘함축’이었다. “함축의 힘”에 대한 믿음은, 몸을 매개로 위용을 갖춰간다. 구멍 뚤린 먹통을 붓 대신 사용하는 것도 함축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자잘하게 여러 번 언급하는 것보다, 강렬하게 한 방을 터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일(一)’은 일필휘지로 구축된다. 순간적인 감정을 몸을 통해 발산하는 까닭에 즉발성과 즉흥성은 작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언제 응축되어 표출될지는 그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우연이 말 그대로 우연은 아니”라고 말한다. “출발은 우연적이고 즉흥적이지만 결국 많은 부분 필연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일(一)’은 화폭에선 다양하게 변주된다. 직선과 곡선을 넘나들고, 점·선·면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어떻게 변주하든, 강렬한 기운으로 수렴된다는 것은 동일하다. 칼날 같이 매끈한 면과 먹이 흩뿌려진 거친 면을 동시에 구사하는데, 이런 독특한 선은 전각에서 착안한 기법이다. “먹통을 활용해 일필휘지로 한일자를 표현하면서 독특한 기운의 선이 살아났습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전환기는 찾아온다. 시련을 겪거나, 새로운 인연을 만났거나, 생각지 못했던 행운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결정을 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도전에 용기를 낸다. 권기철에겐 불화(不和)가 늘 전환의 계기가 됐다. 외로움과 고통 등 세상과의 불화가 심화했을 때 불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결단을 내리곤 했다. ‘일(一)’을 미술의 내용적이고 형식적인 질료로 채택할 시기도 그와 세상 사이의 불화가 불처럼 타오르고 있을 때였다.

‘불화’는 그의 평생 화두다. 조화보다 불화에 먼저 눈을 뜬 것은 힘겨웠던 성장기와 맞물린다. 그의 성장기는 고단했다. 어린시기에 집을 나와 경제적인 자립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당시 수많은 고통과 외로움이 어린 마음을 파고들었고, 그럴 때마다 세상은 아귀다툼의 현장처럼 다가왔다. 그에게 세상은 불화(不和)로 가득 차 있었다. 불화가 그의 마음을 흩어놓을 때 그는 그림을 그렸다. 불화를 화폭에 토해내며 조화를 염원했던 것. 권기철에게 그림은 세상의 불화와 자신의 불화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제게 예술은 심약한 마음을 보듬고 삶의 불화(不和)를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였어요.”

첫 개인전 이후 30년 만의, 만 60세에 여는 60회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 한 번의 변화가 감지된다. 그림을 그리고 남은 부산물, 즉 작업하고 팔레트에 남은 물감 덩어리나 버려진 물감 튜브 등의 작업 부산물들로 틀에 붙인 후 FRP로 굳힌 오브제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쓰레기의 신분세탁이자 작업의 또 한 번의 진화였다. 이번 전시제목이 ‘의미 없는’인데, 이는 의미없는 작업 부산물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것에 대한 역설처럼 다가온다.

“예술은 하루하루를 각성시키는 일기이자 의식을 각성하는 도구이며, 나 자신을 환기시키는 거울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작업 후 버려진 부산물도 저의 배설물이니 저 자신일 수밖에 없었죠. 그것을 집적해 놓으니까 또 하나의 발언이 됐어요.” 먹보다 색 작업 위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2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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