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올려 겨우겨우 수평을 맞춰요 상자를 떨어뜨리면 봄이 한꺼번에 쏟아져 세상은 엉망이 되어버릴 거예요 까치발을 들어도 어깨의 수평이 맞지 않을 때는 길게 한숨을 쉬어요 꼭 감은 눈 속에서 밤인 줄만 알다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서야 밖이 환하다는 걸 깨달아요
봄의 자리는 늘 저 위에 있어요 공원 왼쪽 첫 번째 벤치의 목련 소식을 들고 계단을 올라요 그녀의 가슴 떨리는 분홍빛 소식이 내 손에 있어요 아름다운 옛 축제이야기를 그에게 전해줄 거예요 가슴 부푼 그의 꿈을 그녀에게 들려줄 거예요 계단은 끝이 없어요
올라가면 끝이 있을 거라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끝이 보이지 않아요 올라간 만큼 또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지만, 올라갈 때는 그걸 잊고 계단을 올라요
◇정애진= 충주 중원 출생. 월간 모던포엠 시부문 등단(2010). 시집 ‘화인花印’이 있음.
<해설> 그냥도 세상 사는 일에는 수평을 맞추기 힘든데, 무거운 물건을 들고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상자를 떨어트리면 봄이 쏟아지고 그러면 세상은 어지러울 걸 상상하는 시인은 마치 자신이 택배원이라도 된 것처럼 세밀한 택배 현장 묘사를 시 전체에 동원하고 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 힘든 층계를 오르면서 이 현실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것도 부푼 꿈의 그녀라는 대상에게 목련 소식을 받쳐 들고 오르고 있는 택배원의 설정은 시를 읽는 독자에게도 긍정의 어떤 신호가 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현실이 팍팍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