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박명호 경영칼럼]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 승인 2024.02.2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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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로 의료대란 사태가 발생했다.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의료계의 집단행동 규모가 확대되고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인구가 줄고 있는 판에 해마다 2천 명씩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다’라며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도 필수 의료인력이 매우 부족하며 장차 노령인구까지 급속하게 늘어나 의사 부족이 심각하고 반드시 증원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대세다. 이처럼 증원에 대한 판단 기준이 대부분 인구문제에 놓여있다.

이달 초순 방영된 대통령과의 특별 대담 프로그램에서도 초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고뇌가 엿보였다. “국민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어린이를 많이 아낀 따뜻한 대통령, 그리고 과학기술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싶다고 답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초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인구감소에 대한 깊은 고민과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담긴 답변으로 들렸다.

저출산·고령화는 사회시스템의 붕괴와 국가소멸이란 위기감을 불러온다. 그동안 인구 증가를 위한 여러 해법이 동원되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초저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주도의 정책들도 마찬가지로 기대 이하의 효과를 보였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지자체, 정치계에서는 여전히 출산복지정책과 인구 증가 정책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현금 지원성 공약들마저 쏟아져 나온다. 막대한 필요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한데도 여러 가지 처방을 마구 내놓는다.

설사 저출산 극복에 특별한 방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저출산 해소 방안을 오랫동안 고심해 온 일본 정부는 며칠 전 ‘전국민 저출산세’를 신설하기로 했다. 국민 1인당 월 500엔(4,500원) 수준의 세금을 징수하여 저출산 대책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세금 외에는 묘안이 없어서 나온 극약처방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어서 법안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저출산·저출생 극복에 지난 20년 동안 무려 200∼300조 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향후 더 큰 예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고령화는 분명 생산인구를 감소시켜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그러나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출산 장려에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집중하는 일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비록 인구는 적더라도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존속과 발전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수보다는 삶의 가치가 높은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실학자 유수원은 1737년에 저술한 ‘우서(迂書)’에서 땅의 크기나 인구 규모가 부국안민(富國安民)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경제 제도와 시스템이 국가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경제개혁안의 핵심은 직업선택의 자유와 능력에 맞는 직분, 그리고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상인은 장사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장인은 공업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실력도 없는 양반들이 온갖 편법과 협잡으로 벼슬자리를 구하고 세도를 부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높은 벼슬자리만을 영광으로 여기는 문벌 지상주의를 질타했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지적하는 말이 아닌가.

인구 격감 못지않게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젊은이들이 과도한 경쟁에 휘몰려서 좌절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가 급속히 퇴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의 불안감과 비관, 그리고 가족 해체와 사회안전망 훼손은 인구 축소나 인구구조의 변화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본지 윤덕우 칼럼에서는 대가족 문화가 저출산·고령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 회복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당면한 인구문제의 해답이라는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개인은 물론 기업경영자를 비롯한 모든 지도자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드러커는 강연장에서 늘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을 자기 스스로 확인하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국민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기고 있는 의료대란이 조속히 해결되고, 이 땅의 모든 의료인이 인술(仁術)을 펼치는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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