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범물노인복지관 8인 사진자서전 ‘view로 읽는 8色 인생’
[화요칼럼] 범물노인복지관 8인 사진자서전 ‘view로 읽는 8色 인생’
  • 승인 2024.02.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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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대구범물노인복지관(관장 우지연)의 현관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순간 발걸음이 멈춰진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밤하늘에 별빛 같은 사람아'.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에는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는 지우개가 달렸는지, 금세 머리가 맑아지고 은혜로운 사람들이 떠오르고 걸음이 느려진다. 그 음악의 발현 장소는 승강기 바로 옆 벽면의 알림판이다.

알림판은 복지관 이모저모를 안내하고 정보를 공지하는 곳이다. 필요에 의한, 또는 궁금증 해소의 공간이기도 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알림판의 벽을 마주하고 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근처 소파에 앉아서 하염없이 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벽면을 보느라 도착한 승강기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알림판 하단의 <view 사진자서전>을 읽는 사람들이다.

<view 사진자서전>, 지난해 범물노인복지관에서 주관한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 <사진자서전 쓰기, '돌아보니 '봄' 이더라'> 프로젝트의 내용이 톺아보기의 슬라이드로 제작되어 소개되고 있다. 글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복지관의 배려이다. 그 특별하고 소중한 발상의 가치를 존중하며, 나 혼자 <view 사진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명명해보는 호칭이다. <view 사진자서전>이 탄생하기 전 단계인 프로젝트 사업은 '수성구 거주 60세 이상 중,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국가유공자,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진자서전쓰기' 과정이었고 8명이 참여하였다.

참여자들은 사업기간 동안 직접 손글씨로 쓴 육필사진자서전을 각고의 노력으로 집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사진자서전 인쇄본이 강영자, 김무부, 박명남, 박의순, 안옥순, 윤입정, 정순랑, 조정화 작가명이 새겨진 책이 되어 세상에 선을 보였다. 그리고 이 작업의 주요 내용은 다시 <view 사진자서전>으로 만들어져 복지관 방문자의 발걸음이 잦은 승강기 옆 벽면에서 시청각 자료로 재탄생되어 읽혀지고 있는 중이다.

참가자 가운데 첨삭의 귀재하고 불릴 정도로 열정을 보여준 김무부 작가는 "평소 자서전은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위대한 분들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본인의 자서전을 쓴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분이었다. 그렇지만 어르신을 깍듯이 섬기는 젊은이로 소문난 홍석영 복지사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절반의 기대로 도전하였다. "처음에는 낯선 글쓰기 수업이 막막하고 걱정이 많았지만, 자신의 이름 석자가 내포한 의미를 시작으로 갖가지 인생 문답은 사고 전환으로 바뀌었고, 나도 멋진 나의 자서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처음의 무관심은 소망으로 탈바꿈되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자신의 사진자서전을 보면서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늘 조심스레 살아온 삶',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도우미 역할', '외롭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래하던 가수'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서전 쓰기는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한 그루 나무가 갖은 풍상을 견디며 가슴이 넓어지고 키가 자라듯이, 사람살이를 되짚어보면 마찬가지다. 누구 할 것 없이 돌아보면 굽이굽이마다 불어오는 바람을 견디고, 눈비 내리면 손발 묶여 안타까움에 떨고, 때로는 절벽 앞에서 울부짖었던 기억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글쓰기는 기록을 넘어 치유가 된다. 또한 개인의 기록은 기록을 넘어 공공의 자산이 된다.

한 개인의 일생이 기억으로만 존재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서전으로 태어나 독자를 만나고, 삶과 경험이 회자 되고, 기억되며, 비슷한 환경에 만났을 때는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모색하게 하는 방안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누구보다 우지연 관장의 결단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범부의 삶에 대한 가치를 헤아리고 존엄의 경지까지 이끌어가고자 하는 리더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노인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있을까? 살다 보니 어느새 노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새롭게 부여받은 각자의 노년기는 짧지 않다. 어쩌면 긴 세월을 견디며 버팅겨야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건강한 노년기를 위한 필수 사항을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신체의 근력 단련을 꼽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는 정신 근력의 힘이 답이다. 사진자서전 출간으로 탄생한 8인 작가님을 환영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일원이 되어 남은 노년기가 우울하지 않으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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