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인생 수레
[달구벌아침] 인생 수레
  • 승인 2024.03.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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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사람의 힘으로 직접 끄는 인력거가 있었다. 그래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걸어 다니지 않고,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를 타고 이동을 했다. 지금은 그런 인력거를 보려면 동남아 일부 관광지를 가야 볼 수 있다. 본인도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구(舊) 시가지에서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를 탄 적이 있었다. 이제는 두 발로 직접 끄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와 인력거를 연결해서 관광객을 이곳저곳 여행을 시켜주고 있었다. 보통은 부부나 가족 등 두 명을 태우고 운행을 하지만, 혹여나 사람의 수가 맞지 않을 때는 한 명을 태우고 운행을 하기도 했었다. 인력거는 대당 비용을 내기 때문에 두 명이 타든, 한 명이 타든 비용이 같아서 손님을 한 명을 태우고 운행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 반면에, 두 명을 태우고 운행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이가 젊은 사람은 그나마 덜 힘들어 보였는데, 나이가 든 사람은 운행하는 것이 힘겨워 보였던 기억이 있다.


인력거를 운전하는 기사의 모습이 마치 우리 인생과도 닮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각자가 끄는 '인생 수레'가 한 대씩 있다. 그 수레에다가 자신이 인연을 맺은 사람을 태우고 운행한다. 젊었을 때는 힘이 넘쳐 많은 사람을 태우고도 수레를 잘 끌 수가 있다. 힘든지 모르고 사람을 태우고 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힘은 떨어지고 근력은 약해진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게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수레에 탄 사람들의 무게가 온전히 부담으로 다가오고, 이 부담이 쌓이면 고통으로 변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람만 남기고 수레에 타는 사람의 수를 줄여나가야 한다.


아마도 수레에 가장 마지막까지 머무는 사람은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빈수레를 끌기도 힘든 날이 올 때, 그때는 가족도 수레에서 내려야 할 때가 온다. 그때 수레에는 가장 가까운 벗, 한 명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떻게 보면 빈 수레여도 괜찮다. 빈 수레 끌고 가다가 급하게 계획치도 않은 사람을 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이 왔는데, 힘이 없어서, 너무 많은 짐을 싣고 있어서 그 사람을 태울 수 없다면 참으로 곤란해진다. 그 순간을 위해 끌고 가는 수레를 가볍게 해야 한다. 최대한 수레를 가볍게 하여,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이곳저곳 노닐다가 다리 아파서 걷지 못하는 사람 한 명 만난다면 그때는 그 사람을 태우고 말동무 삼아서 함께 걸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때를 위해 나의 시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아니면 그냥 빈 수레에 갈아입을 옷가지 몇 벌과, 읽을 책 몇 권 정도만 싣고 가도 충분히 멋진 인생일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데, 우리는 욕심을 부리고 필요 없는 것들을 수레에 싣고 같다.


본인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가능했던 젊음이 있었고, 에너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젊었을 때는 힘겹지 않았던 무게가 이제는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열 명을 태우든, 백 명을 태우든 상관없었다. 돌아보면 많을 때는 몇백 명을 태우고 수레를 끌고 갈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에너지가 흘러넘치던 때였기에 가능했다. 나의 에너지를 모두, 수레에 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을 보호해주는 일에 사용했다. 그렇게 나의 넘치는 에너지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수레에 태운 사람들의 무게가 나를 멈추게 하는 날이 많아져 갔다. 수레의 무게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는 사실을 어느 날부터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는 거뜬했던 무게가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무게가 되어서 어느 순간 지쳐버린 내 모습을 발견했다. 수레에 탄 사람들도 '왜 이렇게 힘을 못 쓰냐'라며 되려 나에게 짜증을 내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간혹 용기 내어 '힘들다'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어서 조금만 쉬겠다'라고 '나도 목마르다'라고 하면은 빨리 가자고 재촉하기 바빴다. 젊었을 때는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거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깐 가능하지 않다. 힘은 약해지고, 목은 마르다. 쉬는 시간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 나이에 맞는 사람을 인생 수레에 태워야 한다. 내 나이에 맞는 사람을 태우고 내 길을 가야 한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괜히 고집 피우면 서로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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