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한국 선교사 간첩 혐의 체포…한·러관계에 새 악재
러, 한국 선교사 간첩 혐의 체포…한·러관계에 새 악재
  • 이기동
  • 승인 2024.03.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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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선교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뜩이나 악화한 한러관계에 새로운 악재가 돌출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전날 (11일, 현지시간) 한국 국민 백모 씨가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금됐으며, 추가 조사를 위해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에 지난 1월 간첩죄로 체포된 한국인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벌목공과 탈북민 등을 도우며 선교 활동을 하던 백모 목사로 밝혀졌다.

중국이 지난해 7월부터 간첩죄에 무기징역·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반간첩법을 시행한 데 이어, 러시아도 비슷한 방법으로 외국인에 대한 압박을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작년 9월 북·러 정상회담 직전에는 항공기로 북한 노동자들을 북송하면서 탈북민 수십 명도 함께 강제 북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스 통신은 전날 백 목사가 2월 말 스탈린 시절 반대파를 가뒀던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이송돼 구금 중이며, 레포르토보 법원이 그의 구금 기간을 6월 15일까지 연장했다고 했다. 타스 통신은 그가 20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 ‘벨리 카멘(백석·白石이란 뜻) LLC’란 회사를 설립해 관광사업 등을 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의 4성 호텔에 살았다고 보도했다. 벨리 카멘 LLC는 관광사업 외에도 건설, 의약품, 레스토랑, 승객 수송과 기념품·의류·신발·섬유·소금·설탕·밀가루·커피·차·코코아 등을 거래했다고 한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현지 공관에서 우리 국민의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우리 국민이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이를 위해 러시아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백 목사의 형사 사건 서류를 ‘일급기밀’로 분류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모스크바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구금 중이고, 작년 6월에는 자유유럽방송 소속 기자를 ‘외국 대리인 등록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기소했다. 러시아 현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외국인을 임의구금하는 중국과 달리 그동안 러시아는 법적 절차 없이 외국인을 구금하지는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며 “타스 통신을 통해 사건을 공개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사건 내용이 공개되면 러시아의 정책 변화를 정확하게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사안은 최근 악화한 한러관계와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한러관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이 서방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에 나서면서 몹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12일 “한러관계가 사상 최악이기 때문에 이런 사안이 생겨나 활용될 가능성은 충분했다”며 “러시아의 외교 스타일을 보면 (다른 나라와) 관계가 나쁠 때 이런 일은 거의 예외 없이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외교가에선 이번 사안이 백씨가 체포되고 두 달이 지난 뒤에야 러시아 관영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배경이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이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백씨 사건을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동기자 leekd@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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