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새벽안개
[좋은 시를 찾아서] 새벽안개
  • 승인 2024.03.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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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주 시인

네온사인 하나둘 제 색을 입을 때

발소리 낮추며 집으로 가는 이들

말없이 배웅하며

이 잠행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 밤의 전령은 도시의

달과 별을, 과감하게 떼어내었다

안개의 발자국이 깊어질수록

술잔은 급격하게 비워지고

스멀거리며 침범해오는 물비린내에

내 오금은 습습해지고 있었다

우두둑 뼈 맞혀지는 소리가

블록을 뚫고 도시를 깨우고

마침내 나는 구두를 벗고

잠행을 놓는다

◇최은주= 1971년 하동 출생. 2010년 <시와경계> 신인상 등단. 양산문학회원. 다울문학동인. 이팝시동인으로 활동 중.

<해설> 새벽안개와 잠행을 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새벽안개의 속성이 잠행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런 잠행의 시작을 가로등이 밤새 뜨고 있던 눈을 스르르 감는 시간과 그런 아침의 시간에 발소리를 죽이며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체험을 데려온다. 잠행의 중심에는 시인이 있고 달과 별을 떼어내는 것은 밤의 전령 몫이다. 잠행의 마지막 과정은 술잔을 급격하게 비우는 것이고, 몸이 곧 안개처럼 풀리면서 물비린내에 이른다. 그러니까 안개의 소리를 시인은 읽어내고 있는 것인데, 우두둑 뼈 맞혀지는 소리로 투사되는 것은, 도시의 삶이 가져온 무언가 어긋난 현실에 대한 울분 같은 것은 아닐지, 아무튼 시인이 말하는 안개는 대상으로서의 안개라기보다는 심중의 의미를 지닌 안개로 시인 자신일 것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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