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 아웃] 어떤 롱테이크
[백정우의 줌인 아웃] 어떤 롱테이크
  • 백정우
  • 승인 2024.03.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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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
영화 ‘데드맨’ 스틸컷

영화 ‘데드맨’의 러닝타임 31분 지점부터 33분 30초까지, 집권당 회의실에서 벌어진 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선거전략 전문가 심여사의 숏. 전말은 이렇다. 정책으로 승부해야지 정치자금을 가지고 시비 거는 건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끝난 거 아니냐고 심여사의 전략이 정말 맞는지 모르겠다면서 특보가 의문을 제기하자, 패닝한 카메라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끝자리의 심여사를 비추고. 심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면서 선거에 대한 지론을 펼치는 2분 30초, 롱테이크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여전히 사이즈가 제일 큰 벤처는 대선이에요. 정치자금 이슈가 낡았다, 디지털금융 시대다 말들 하죠. 특보님 죄와 벌 읽어봤어요?”라며 질문을 던지자 “도스토옙스키? 읽어봤죠. 대학 때. 군에 있을 땐가.”라며 특보는 얼버무리고. 심여사의 이어지는 질문과 특보의 대답. “야동도 봐요?” “그런 거 안 봐요. 내가 딸만 둘인데” 뒤이어 회의를 마무리하는 심여사의 말, 회심의 카운터펀치다.

“고전이란 거, 다 아는 체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안 읽는 거고. 야동은 다 봤지만 아무도 안 본 척 하는 거죠. 정치자금이 그런 거잖아요. 국민은 모르지만 다 아는 척 하고, 정치인은 다 알지만 모른 척 하는 거.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은 특정후보를 반대하기 위해서 투표장에 더 많이 가요. 대표님이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보다, 황의원이 부적합한 이유를 설명해야 싹이 잘리는 겁니다.” 카메라는 3/4쯤 탄 담배와 재떨이를 편심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확신컨대 감독은 담배가 자동 연소하는 시간을 계산해 숏을 짰을 테고, 대사 시간에 맞춰 롱테이크를 연출했을 것이다).

심여사의 롱테이크가 흥미로운 건 2분 30초 만에 당 대표와 참석자 모두를 설득시켰다는 점이다. 담배 한 개비가 채 타기도 전에. 내부에 있는 정치인은 부담스러워 말하기 꺼리는 돈 얘기. 내부자들은 자유롭지 못한 정치자금에 대한 의문과 상대방 공략방식을 외부자 시선으로 적확하게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방식. 영화에서 몇 차례 배신과 반전이 오가지만, 자신의 가치와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준 심여사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유이다.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후보들은 효율적 선거운동을 위해 애쓰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내 장점을 부각시키느냐,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공략하느냐. 어떤 선택이 잘 먹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때만 되면 업적은 드러내고 불명예스런 과거는 지우느라 분주하다. 그렇다고 호박이 수박되겠냐마는.

여전히 한국정치에 국민은 없다. 모두 그럴싸한 공약과 장밋빛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지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정권수호와 정권탈환의 날선 공방 말고는 어떤 목적도 보이지 않는다. ‘데드맨’의 롱테이크가 매력적으로 와 닿는 현실. 이 쇼트에서 내가 화면을 스톱시킨 이유, 여전히 우리는 심여사 유의 네거티브 전략이 먹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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