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생명의 무게와 그것을 짊어져 온 분들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며
[의료칼럼] 생명의 무게와 그것을 짊어져 온 분들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며
  • 승인 2024.03.1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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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곤 대구시의사회 의무이사, 율하연합가정의학과의원 원장
어느 날 안면이 있는 듯한 환자분이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진료 후 나가던 환자분이 돌아보더니 ‘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세요’ 라고 하셨다. 말끝에 묻어나는, 눈빛에 비쳐 보이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의아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어디 멀리 가시나봐요?’ 여쭤봤고 미국에 아드님이 살고 있어 간다고 하셨다.

어딘가 불안했던 느낌이 틀렸다 생각하며 ‘좋으시겠네요.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라고 답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원장님 우리 손녀 기억하시지요?’였다. 대답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개원초기에 특이한 환자분이 할머니와 찾아왔다. 스물세살 여자분인데 천골에 골육종이 생겨 서울에서 수술 후 상처소독을 위해 왔다. 상처의 거즈를 제거하니 뼈가 드러나고 농이 엉켜있었다. 닦아내고 소독을 하는데 소독약이 닿으니 따가운지 아따시, 아따시 하는 특이한 소리를 내었다. 난생 처음 듣는 표현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고 ‘웃어서 미안해요’라고 하자 ‘괜찮아요’라고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후로도 서울에서 치료 받으며 한달에 한번 꼴로 소독하러 왔고 상처가 크다보니 소독하는 동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무용을 전공 했다는 것과 골육종 진단 후 대구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느날은 우리 의원 블로그 리뷰를 달았다며 확인해보라 하는데 마음써준 것이 기쁘고 고마웠다. 한창 이쁠 나이에 암으로 큰 상처가 생겼고 치료과정도 힘들텐데 항상 밝은 모습이 대견했고 잘 이겨내길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렇게 서너달 치료를 받다 어느날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외과전문의가 아니라 소독, 봉합이 어설퍼서 다른데 다니는건가? 아니면 치료가 잘 되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혹시 많이 아픈 건 아닌가? 한동안 걱정과 궁금함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잊혀져갔다.

그때 손녀분과 오셨던 할머니가 반년이 지나 진료를 보러 오신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당연히 기억하죠~ 도은씨는 잘 지내나요?’ 여쭤봤는데 눈시울을 붉히며 ‘2주전 하늘나라로 갔어요’라고 답하셨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빛과 말투에서 느꼈던 왠지 모를 불안함이 이거였구나. ‘우리 손녀 잘 치료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말하며 돌아서는 뒷모습에 ‘건강히 잘 지내세요’라고 인사드리는 내 말 끝에도 물기가 묻어났다.

멍하니 앉아 있다 밀려있는 환자들을 보고 진료를 시작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짧았지만 기억에 남는, 가끔 떠올리며 미소 짓는 추억이 되었다.

생명이 오가는 바이탈과 선생님들은 필연적으로 환자를 떠나보내는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그 아픔들이 쌓여가면서 노련하고 성숙한 의사로 성장한다.

매 순간들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지 막연히 상상해보고 힘든 길을 택한 분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겐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보니 생명을 떠나보내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의대정원확대와 필수의료 문제로 정치권과 의료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를 늘여 기피하는 필수의료에 억지로 가게 만들겠다는 취지이다. 내가 보고 들어온 그리고 실제로 알고 지내는 필수의료를 하고 계신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환자를 위하고 숭고한 의업을 위해 그 길을 가고 계신 분들이다.

단언컨대 생명을 떠나보내는 무거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탁상에 모여 공론중인 분들보다 훨씬 지금의 의료위기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한다. 올바른 의료체계를 진정 원한다면 스스로 가시밭길을 헤쳐가고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듣고 가파르고 힘들지만 걷는 보람이 있는 꽃길로 가꾸어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밥그릇 챙기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의사들이 사실은 누구보다 환자를 생각하고 곁을 지키고 싶어하는 내편 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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