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영조의 천기와 인생괘적
[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영조의 천기와 인생괘적
  • 승인 2024.03.18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영조(英祖)는 조선 왕실 최초로 세자(世子)가 아닌 세제(世弟)로서 왕위에 오른 군주이자 재위기간이 52년(1724∼1776)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왕이다. 영조는 18세기 손자인 정조와 더불어 '조선의 르네상스'를 구현한 왕이다. 두 번째 왕후인 정순왕후 김씨옆에 나란히 있는 구리시 동구릉의 원릉(元陵)이 영조의 왕릉이다. 원릉은 효종의 왕릉인 영릉(寧陵)을 파묘(破墓) 한 곳에 다시 쓴 특이한 왕릉이다. 영조의 첫 왕비인 정성왕후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영조와 정 반대인 고양시 서오릉에 묻혀 있다.

영조는 조선의 제21대 국왕으로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시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화경숙빈 최씨 사이에서 창덕궁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사주팔자는 청주시 상당구 무성리의 태실(胎室)의 아기비(阿只碑)의 전면에 기록되어 있다. 즉 '강희삼십년구월삼십일인시생왕자아기씨태실(康熙三十年九月三十日寅時生王子阿只氏胎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동안 영조의 사주는 갑술년(甲戌年) 갑술월(甲戌月) 갑술일(甲戌日) 갑술시(甲戌時)의 '4갑술'로 잘못 알려져 왔다. 그의 사주원국은 다음과 같다.

이 사주는 한로와 상강이 지난 늦은 가을인 ①술토(戌土)비견월의 ②무토(戊土)일간이다. 술토는 월(戊,도끼)의 고어로 무(戊)와 일(一)을 합한 초목이 무성함을 의미한다. 술의 지장간이 ㉠신정무(辛丁戊)로 화려함을 숨기는 이중성이 있고 고독감이 있다. 술토는 태양빛인 병화(丙火)와 산과 벌판인 무토(戊土)가 인오술(寅午戌)의 삼합(三合)을 마무리하는 12운성상의 묘고(墓庫)의 자리이다, 술토는 화와 금의 마무리로 윤회로의 회귀이니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술해(戌亥) 천문의 자리로 신통력이 있다.
근본적으로 술월의 무토는 월겁격(月劫格)사주이다. 년월이 모두 술토를 가진 ②무토(戊土)일간이다. 이 사주는 오행의 고성이 토-3개, 금-0개(지장간에 2개), 수-0개, 목-5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오행이 주로 토와 목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금수목(金水木)이 부족하나 지장간(地藏干)에 병화(丙火) 편인(偏印)과 정화(丁火) 정인(正印)및 신금(辛金) 상관(傷官)이 숨어있다,

먼저 사주를 간명할 시 일간(日干)기준으로 오행의 분포를 보고 두 번째 태어난 달의 지장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즉 이 사주는 월의 지장간이 ㉠신정무(辛丁戊)이다. 신금은 무토 입장에서 상관(傷官)에 해당한다. 명리학의 십성(十星) 이론인 상관은 선견지명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총명하고 친화성 있는 십성으로 특히 언어능력이 좋다. 비판기능이 너무 강하여 오해와 비방을 사는 경우가 강하다. 특히 잔소리를 너무 싫어하고 저항의식과 개혁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가 숙종과 경종대의 당쟁을 극복하고자 완론탕평(緩論蕩平)책을 적용한것도 이런 성향이다. 한편 신경이 예민하여 오해와 비방을 자주 당하는 것도 상관의 특성이다. 경종독살설과 소론 급진파인 김일경과 목호룡일파로 부터의 공격과 1728년 이인좌의 난을 경험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정화의 정인(正印)은 조상이나 자연계의 무한 한 혜택과 전통을 계승하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즉 조상이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매우 상식에 투철한 인물로 대세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주위와의 조화를 지키려는 인물이로다.따라서 안정되고 편안한 환경이 보장된다면 주위환경에 적응하여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한다. 그가 무수리 출신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조선 역사상 최초의 왕세제로 왕위를 계승하고 가장 많은 왕과 신하들의 학문토론인 경연을 실시한 것은 이런 정화의 정인(正印)의 영향이다.

1699년(숙종 25) 연잉군에 봉해졌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했던 관계로, 노론 유력자인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종질녀로서 숙종 후궁이던 영빈(寧嬪) 김씨의 양자노릇을 하였다. 또한 왕실의 최고 존장자인 숙종의 제2계비인 인원왕후(人元王后)의 지원을 받아, 연잉군이라는 일개 왕자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 경종의 뒤를 이을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이로 인해 숙종 말년 왕위계승문제가 표면화되었을 때, 이복형인 왕세자(후일의 경종)를 앞세우는 소론에 대립했던 노론의 지지와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무토(戊土)의 비견(比肩)이 강하여 독립심과 형제 동료와의 유대관계가 좋다고 본다. 이복형인 경종의 지원없이는 그가 왕이 되기는 힘들었다고 본다, 이 사주의 가장 강한 특징은 권력지향인 갑목(甲木)과 인목(寅木)의 편관(偏官)이 과다한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엄격하고 피해의식이 강해지는 특성이 편관과다사주의 특징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