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콘서트하우스 ‘아티스트 NOW’…성악가 사무엘 윤, 獨 최고 영예 ‘궁정가수’의 독보적 존재감 확인
대구콘서트하우스 ‘아티스트 NOW’…성악가 사무엘 윤, 獨 최고 영예 ‘궁정가수’의 독보적 존재감 확인
  • 황인옥
  • 승인 2024.03.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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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서사 결합한 콘텐츠 추구
이해도·재미 높여 대중화 목표
성악 인생 관객에 체계적 전달
무대 위 매순간 100% 역량 발휘
바이로이트 주역 대타 공연 찬사
쾰른 극장 종신가수 대신 귀국행
대구 ‘인큐베이팅’ 등 후학 양성
“성공 비결은 다양한 무대·인성 ”
사무엘 윤의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모습. 대구콘서트하우스 제공
사무엘 윤의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모습. 대구콘서트하우스 제공

 

지난 14일 대구콘서트하우스 무대에서 그가 조두남 작곡의 뱃노래를 열창하자 그 옛날 뱃사공이 강을 거스르며 노를 저어 가는 힘찬 결기가 목소리에서 전해졌고,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몸짓에선 뛰어난 연기력을 소유한 배우 같았다.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당신을 잠들려고 하지만’을 열창하는 장면에선 강렬한 포스에 압도당했다. 악인인 메피스토펠레스의 현신 같았다.

이날 무대에서 비교불가의 몰입감을 선사한 성악가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이날 공연에선 그근 오페라의 명문인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종신 가수로 활동하고, 2022년 독일 주정부가 수여하는 독일어권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수여 받은 원동력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대를 선사했다. 무대 위 그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이날의 공연은 대구콘서트하우스의 기획 공연인 ‘아티스트 NOW’의 올해 첫 무대였다. 무대 위 아티스트와 나누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티스트의 음악세계를 집중하는 클래식 토크쇼 형식의 공연인데, 성악가 초청은 올해 첫 시도였다. 첫 주자로 초대한 성악가가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성악가 사무엘 윤이었다.

사무엘 윤의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모습. 대구콘서트하우스 제공
사무엘 윤의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모습. 대구콘서트하우스 제공

사무엘 윤은 이날 공연에서 진행을 맡은 김호정 중앙일보 기자와 남다른 케미를 자랑하며, 자신의 음악 인생을 연주와 토크로 펼쳐냈다. 공연을 마친 직후 만난 그는 “토크 형식의 공연은 처음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저의 성악 인생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객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관객들이 저의 음악세계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의미 있고, 즐거웠습니다.”

이날 공연의 특징은 각기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지만 공연에 자신의 음악 인생이라는 서사를 입혀 몰입감과 흥미를 더했다는 것. 그의 음악 인생에서 의미 있던 해의 공연 작품을 노래하며, 당시의 거침없었던 행보들을 관객에게 소개했다. 공연 내내 관객들의 눈과 귀는 한 순간도 그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대를 응시했고, 점점 그의 서사와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연과 서사의 결합은 그가 귀국 후 밀고 있는 콘텐츠다. 그는 지난해 가곡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해 극적인 가곡으로 재탄생시키는 공연을 펼쳤다. 가곡을 극화하는 공연은 해외에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다. 지난해 가곡 속 시의 내용을 음미하며 연기하는 공연들을 통해 서사가 있는 공연 시대를 열었다.

그가 “청중과 공유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음악은 희망이 없다”며 공연과 서사를 결합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공연과 서사의 융합으로 청중의 이해도와 재미를 높이겠다는 포부는 결국 클래식 대중화와 연결됩니다.”

그는 이날 공연의 프로그램을 그가 성장기에 함께 했던 작품들 위주로 구성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인생은 드라마틱했다. 서울대 음대 졸업 후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음악원과 독일 쾰른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오페라 가수 등용문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1998년 우승하며 분기점을 맞았다. 덕분에 이탈리아 트레비소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로 데뷔하며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콩쿠르에서 그를 눈여겨 본 독일 쾰른극장장의 제안으로 이듬해 쾰른극장 단원으로 가수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가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것은 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였다. 당시 개막작인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역이었던 바리톤 예브게니 니키틴이 몸에 독일 나치를 상징하는 문신을 새긴 일로 논란이 돼 개막 나흘 전 물러나게 되면서 그가 전격 발탁된 것이다. 사무엘 윤은 단 한 차례 무대 연습 후 무대에 올라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고, 그에게는 ‘바이로이트의 영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 공연을 봤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부부까지 “독일어 발음이 너무 좋아 다 이해했다. 갑작스러운 주인공 교체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해냈다”라며 놀라워할 정도였다.

바이로이트 축제 이후 그의 음악 여정은 탄탄대로였다. 바이로이트 축제에 단골 가수로 초청되고, 런던 코벤트 가든, 베를린 도이치 오퍼, 드레스덴 젬퍼 오퍼, 밀라노 스칼라 극장, 파리 바스티유 극장, 마드리드 왕립극장, 바르셀로나 리세우 국립극장, 뮌헨 국립극장, 비엔나 오페라극장, 미국 리릭 오페라 시카고 등 세계 주요 극장에서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그의 국제적인 성공 비결은 이날 공연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큰 무대나 작은 무대 가리지 않고 주어진 무대에서 100%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예술의 존재이유가 관객이라고 믿으며 매순간 무대 위에서 100%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자신의 역량을 100%까지 쓰는 것은 무모할 수 있습니다. 성악가로써의 긴 여정에서 매번 에너지를 다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요. 하지만 결국 저는 관객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에게 최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100%의 역량을 쓰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쾰른극장에서 65세까지 안정적인 자리를 보장받으며 ‘종신가수’로 예우를 받았지만 그는 세계적인 성악가의 명성을 뒤로하고 2022년에 귀국했다. 그 배경에는 후학 양성과 국내 성악계와 오페라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클래식 대중화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날 공연에서도 현실이 됐다.

청중들은 이날 공연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그가 출연하는 구노의 ‘파우스트’를 관람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청중들이 그의 한 편의 공연을 보고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고, 그의 다음 공연을 보겠다고 말 할 만큼 이날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노래와 서사는 강렬했다. 그는 오는 4월에 대구오페라하우스 제작 작품인 구노의 ‘파우스트’ 무대에 오른다. “공교롭게도 3월과 4월에 연이어 대구 관객과 만나게 됐다”며 그가 반가움을 전했다.

이날 객석엔 젊은 성악도들도 자리했다. 그들은 국제적인 성악가의 노래와 인생을 들으며 성악가의 꿈을 더욱 단단히 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엘 윤의 후배나 후학에 대한 유별한 사랑은 이미 알려져 있다. 쾰른 오페라극장 솔리스트 시절부터 다른 도시에 공연을 갈 때마다 한국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마스터 클래스를 여는 등 멘토 역할을 해왔다.

당시 유학생들이 그에게 건넨 수백 통의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을 만큼 후배들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가 65세까지 보장된 쾰른오페라극장을 마다하고 귀국한 것도 후학들에게 ‘쓰임’이 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가 서울대 재직하며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신진 성악가을 위한 ‘인큐베이팅’인 ‘오펀스튜디오(Opernstudio)’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행도들은 모두 후학 양성에 맞춰져 있다.

그는 젊은 성악가들에게 인내와 기다림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선배 성악가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지만 고3 때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벼락치기로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일찍 성악을 시작한 동기들을 보며 한계를 느꼈고, 콩쿠르 역시 실패만 맛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보다 인내를 택했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결국 그는 독일어권 성악가의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카머쟁어)’가 됐다.

그에게 좋은 성악가의 자질을 물었더니 일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무대경험’과 ‘인성’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매해 300여편의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거의 매일이 공연의 연속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몸짓엔 진심이 담겼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그가 좋은 성악가가 되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며 경험할 때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스펙트럼의 한계를 넓히게 되고, 그것이 감정표현에 충실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입장이었다.

“비록 나쁜 사람과 나쁜 경험이라도 지나고 나면 그것들이 무대 위에서 내공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만나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후학들에게 인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무대 위나 무대 밖에서의 행동이 다르지 않을 때 공연에서 진정성 있는 노래와 연기를 펼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후학들에게 “겸손하게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일상에서 배려하고 겸손하면 그것인 결국 무대에서 묻어나게 됩니다. 결국은 인성이 좋은 성악가를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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