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겁이 많아질 나이
[달구벌아침] 겁이 많아질 나이
  • 승인 2024.03.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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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겁이 많아졌다는 건, 지켜야 될 무엇이 생겼다는 것이고,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것이다." - 드라마 조선변호사 대사 중 일부.
위 말은 한 TV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겁 없이 세상을 맘껏 쥐락펴락 하던 한 사내가, 어느 순간 겁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많아졌다면서 힘들어할 때 여자 주인공이 그에게 하던 말이다. 위의 말이 나에게 가시처럼 콕 박혀서 빠지질 않았다. 나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한창 혈기 왕성하던 젊었을 때에는 정말로 겁나는 것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가진 것이 많아지면서 나는 정말로 겁이 많아졌다. 아니, 겁 많은 것을 넘어, 때론 비겁하기까지할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때론 서글퍼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뜻이 되고, 꿈꾸고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는 뜻이니,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흔히 가장 무서운 사람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앞 뒤 재지 않고, 일을 저질러 버리기 때문이다. 소위 철 모르는 나이 어린 학생들과,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고, 친구도 없이 세상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우리는 보통 젊었을 때보다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켜야 될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가진 것을 잃을까 봐, 행복한 순간이 뺏길까 봐 두려워한다. 두렵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을까 싶어서 생기는 마음이기에,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우리는 가진 것이 많고, 잃을 것이 많다는 뜻이 되니 감사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 그런데 마치 태어날 때부터 손에 가득 움켜쥐고 태어난 것처럼 착각을 할 뿐이지,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몸, 빈손으로 태어났다. 이후 살아가면서 하나씩 가지게 되었고, 손에 쥐기 시작했다. 내 곁의 사람도 내 것이 아니요, 나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 또한 모두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인생살이도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지금 당장 떠나도 아무런 억울함 없는 그런 삶이, 내 삶이란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두렵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듯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그냥 일상의 것들도 나이가 듦으로써 의미로 다가올 때가 많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이 예쁜지 모르고 살다가, 나이 듦이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나이가 들어보니 알게 된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편이 되어 주는 그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이 들어서 알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도 나이가 들어서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렇듯 세월은 나에게 참으로 좋은 스승이 아닐 수 없다.
한 여성이 남편 문제로 상담사와 상담 중이었다. 남편의 성격적인 문제부터, 시댁의 문제, 남편의 건강문제, 남편의 직장문제까지 그녀는 너무 걱정이 많았다. 거의 2시간 동안 쉴 틈 없이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았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상담사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럼 당신은 남편이 계신가요?" "네 당연히 있지요. 있으니깐 이렇게 걱정을 하지요"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무엇을 감사하란 말씀이시죠? 지금 제가남편 때문에 이렇게 힘들다고 얘기하는데요" 이말을 듣고 다시 상담사가 그녀에게 말을 했다. "당신이 지금 남편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는 말은 지금 당신 곁에 남편이 있다는 말이고, 걱정하는 직장도 남편에게 있다는 얘기니깐 가진 것에 감사하란 겁니다. 누구는 그런 남편도, 잃어버릴 직장도 없답니다." 상담사의 말을 듣고 여전히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상담사의 말은 전혀 반박할 수 없는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렵다는 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당신 곁에 있다는 소리가 된다. 건강을 잃을까 봐 두렵다면 지금 건강하다는 소리가 된다. 앞으로 못 볼까 싶어서 두렵다면 어찌 되었건 지금은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세상 모든 것은 밝음과 어둠처럼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게 어둠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왕이면 밝음을, 이왕이면 긍정에 눈을 돌리기로 하자. 그리고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보다는 지금 가진 것에 대해 만족과 감사를 해보자.
미래를 앞당겨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할 것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맘껏 누리며 살고, 충분히 감사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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