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모닝커피의 낭만
[좋은 시를 찾아서] 모닝커피의 낭만
  • 승인 2024.03.20 22: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성일 시인

산천이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변하기 전의 일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호수에

노란 돛단배가 둥둥 떠 있다

스푼으로 노저어서

조심스럽게 파도를 일으키자

커피의 쓴맛과 비리한 계란의 노른자위

냄새가 언제나 유혹하지만

아마도,

치맛자락 바닥 쓸고 코티분 향기 날리며

조용한 눈웃음치는

여왕다방 누님 같은 마담이

노총각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도장 찍었다

그녀와 같이 모닝커피 한잔하면서

예전에 옆구리 한번 찔러 보지 못하는

수줍음 가득한 노총각이

때늦은 고백을 하여야겠는데,

◇백성일= 경북 고령 출생. 심상 등단. 대전투데이 논설위원 (현). 수상: 작가와문학상, 중국도라지해외문학상, 백두산문학상, 한중문화예술교류대상, 경기문창문학상, 중국송화강문학상, 해외문학상, 한반도문학대상, 시집 ‘멈추고 싶은 시간’, ‘바람이었다’ 등이 있음.

<해설> 모닝커피에도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전을 계산하는 시인의 방식은 신천이 몇 번 정비된 것인지, 신천의 변천사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신천물에 노란 돛단배를 둥둥 띄우는 시인의 상상력은 독특하다. 커피가 귀하던 시절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고 코티분 냄새와 함께 조용한 웃음을 보여주던 당시 다방의 풍경을 회상하듯 묘사하는 시인은, 당시의 기억에서 향수를 느끼는 듯, 낭만적인 과거의 노른자를 조그만 스픈으로 휘휘 젓고 있다. 노총각일 때 드나들었던 다방, 마담 옆구리 한번 찔러 보지 못한, 아직도 수줍은 노총각 자신을 데리고 시인은 가슴에 방망이질을 놓고 있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