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형들은 가끔 몸보신 한다고 살찐 황구 한 마리 끌고 와
외진 구석 감나무에다 가마니로 둘둘 말아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매질을 했는데, 매질이 심할수록 고기 맛이 좋다고 무섭도록 두들겨 패던
형들의 그 짓을 누가 또 보았을까?
오늘 문득, 개 한 마리
사람의 탈을 쓴 미친개 한 마리,
가마니에 둘둘 말아
으슥한데 매달아 버리고 싶은 밤.
빌어먹을,
저 놈의 달은
왜
도끼눈을 뜨고 지랄인지.
◇권영호= 1995년『문예한국』으로 등단. 대구문인협회 감사. 대구시인협회 이사. 시집 『바람은 속도계가 없다』가 있음.
<해설> 가상의 상황일까, 실재의 상황일까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참지 못할 울분이거나 피해의식을 오래전 개를 도살하던 상황에 빗대어 감정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니까 몸보신 한다고 주로 개를 잡아먹던 계절은 초복 무렵부터 말복까지인데 이 시의 제목은 겨울밤에 일어난 어떤 혹독한 음모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형들의 그 짓”으로 보아 시인 보다 앞선 세대에 대한 어떤 혐오를 드러내면서도 한편 시인 자신도 어떤 상황에 놓이고 보니, 감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2연에서 드러내고 있으며 3연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심정적 정화가 이루어져서 화를 낸 자신의 부끄러운 심정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시 쓰기의 어떤 카타르시스가 이와 다르지 않을 진데, 매 맞아 죽어가던 개가 매달렸던 감나무 가지는 그날의 비명처럼 가지가 축 늘어지도록 아직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피멍처럼 익은 감을 개가 죽은 그날 이후 죄스러운 까치밥으로 매다는 것은 아닐까.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