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일본 건축캠프
[문화칼럼] 일본 건축캠프
  • 승인 2024.03.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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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곳에 담겨 있는 것 보다 그 공간이 눈에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름난 미술관에 들렀는데 거기서 마주한 작품보다 건축물에 대한 인상이 더 크고 선명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보니 건축물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의 문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도시의 숨겨진 코드를 알아챌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최근 일본 건축캠프에 가게 되었다.

스무 명 조금 넘는 일행은 건축계의 이름난 분들과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일할 젊은이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니즈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익히 알고 있는 미술관, 도서관을 포함하여 4박 5일간 스무 군데 가까이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여정이 시작 될 무렵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2024 프리츠커상에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이라는 분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올해로 가장 많은 프리츠커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 일본이라는 얘기에 답사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과연 그럴 만 한 것 같다.

정말 세심히 이용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을 녹여 냈다고 느끼는 건축물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13 프리츠커 수상자인 이토 도요의 ‘민나노모리 기후 미디어 코스모스’ 2층 도서관이 그러했다.

궂은 날 해질녘에 도착해 바라본 나지막한 기후시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외관도 멋지지만 물결치는 듯한 격자무늬 목재 지붕아래 11개 구조체의 코스모스가 펼쳐진 내부 공간. 각 공간의 용도에 최적화된 책걸상과 사람 키를 넘지 않는 낮은 눈높이의 책장들. 하나하나 따져보면 매우 단순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아주 조화롭고 창의력 넘치게 표현된 공간이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명상의 숲 화장장’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 건축도 그러하다’는 이토 도요의 생각이 잘 펼쳐진 곳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 그를 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따뜻이 어루만져 주는 공간이어서 이곳에서의 이별은, 덜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공간. 거리를 끌어들이고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건축물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카나자와 시의 ‘21세기 미술관’은 듀오 건축가 SANAA가 프리츠커상을 받기 전에 만든 작품이다.

미술애호가에게 특히 유명한 이곳은 도시의 환경에 녹아들도록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미술관의 문법과는 사뭇 다른, 거리를 끌어들인 접근성과 열린 전시 공간 구성 등으로 유명하다. 올 정초 노토반도 지진의 여파로 축소운영 중이었지만 건축물의 존재감만으로도 이 미술관이 가진 의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은 일본 공공도서관의 트렌드인 ‘체류형 도서관’의 전형과 같은 곳이다. 빛의 변화를 고려한 외관뿐만 아니라 장관이라 불러야 할 거대한 내부 공간을 위압적이지 않게 편안히 다듬었다. 특히 500여개의 의자를 100종 이상 다양하게 갖출 만큼 이용자들을 배려한 여러 요소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라면 온 종일 책과 함께 편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건축가들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힘의 중심에는 이것을 구현해주는 시공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과연 저곳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허공에 매달린 다실 등으로 유명한 후지모리 테루노부의 ‘타지미 모자이크 타일 뮤지엄’이 대표적이다. 만화 같은 그의 구상, 실현 가능할까 싶은 건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이를 수용하고 구체화 시키는 장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사는 집을 3번씩이나 리모델링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인프라가 있다는 것은 매우 부러운 현실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같은 사람도 그러하지만 일단 “안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일부(?) 시공자들은 건축가에게도 언제나 극복하기 어려운 대상일 것이다.

역시 프리츠커 수상자인 ‘이소자키 아라타’의 ‘세라믹 파크 미노’를 둘러보던 중 이번 건축캠프 가이드를 맡은 박사님에게 들은 이야기. 수수께끼의 남자라고 불린다는 이소자키는 대단한 깊이의 철학을 바탕으로 많은 책을 쓰기도 했지만 일본 후배 건축가는 물론이고 ‘자하 하디드’를 비롯한 여러 걸출한 외국 건축가들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고 한다. 일본의 이런 코스모폴리탄 정신이 있었기에 근대 서양 건축을 받아들여 오늘날 일본건축의 토대를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자기 지방 출신 건축가에게 일을 맡기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이런 문화가 있기에 그들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으리라 본다.

아직 이것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내게는 모두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일본의 문화예술 중 가장 수준 높은 분야, 그것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배어있다고 비쳐진다. 여기에는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문화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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