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닿는 햇살의 속삭임과 연두빛 바람 또한
당신이 보내온, 당신 그리움의 상형문자입니다.
당신은 언제 내 마음 속에 오셨나요?
<감상> 지난 가을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국제아트페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쿨투라’ 대표 손정순 시인의 초대로 들린 아트페어 전시장은 수많은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으로 길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외진 부스에 설치된 조용한 도예작품 몇점이 눈길을 홀렸습니다. ‘김순희 작, 그냥 살아도 괜찮아’, 네임 텍에 적힌 제목이 내 마음을 까닭없이 사로잡았습니다. 작가의 양해를 얻어 근접촬영도 하고 작품 설명도 청해 들었습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그냥 살아도 괜찮다며 기타를 치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 까닭이 무엇인지 스스로 궁금했습니다. 곰곰이, 마음 빼앗긴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그 때/거기 젊은 날의 내가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세레나데일 터입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이룰 수 없음으로 눈부신 것일지니 괜찮아, 괜찮아 내가 나를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그냥 살아도 괜찮아> 앞에서 나는 ‘살아보지 못한 삶’의 상처, 내 무의식 속 그림자(shadow)를 만났던 것입니다. 불 꺼진 창을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에게 상처를 ‘찔리게’된 까닭입니다. 마음을 빼앗긴 이유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진에서 자신만이 맞닥뜨리는 주관적 자극을 롤랑 바르트는 ‘찌름’이라는 뜻의 푼크툼(punctum)이라 하지요. 푼크틈에 대한 이해는 디카시 쓰기의 필수 과정입니다. 시적 발상의 단초(端初)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