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다.
<팔공시론>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다.
  • 승인 2009.01.0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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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배재대학교 연구교수)

소는 인간의 운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십간(十干)또는 천간(天干)과 함께 육십간지(六十干支) 또는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루는 십이지(十二支)의 두 번째 자리에 해당되는 축(丑)은 각 지지(地支)에 대응시켜 놓은 열두 동물인 생초(生肖)로는 소(牛)를,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적으로는 오전 1시에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 음양으로는 음(音), 오행으로는 토(土)를 지키는 방향신(方向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십이지의 두 번째 자리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갈라져서 음(陰)을 상징한다는 점과 성질이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아 씨앗이 땅 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소는 인류에게 가장 친숙했고 또 필요했던 동물이었다. 1만 5000년 전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 그린 들소나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 그린 들소는 인간의 생존과 희망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유럽의 명칭과 관련된 신화에서도 소가 등장한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신이 지중해의 아시아 쪽 연안에 있는 티레의 에우로파(Europa) 공주를 납치하여 크레타 섬에서 결혼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아직도 유럽 곳곳에 남아있다.

소의 내면적 특성과 소가 창출해 내는 이미지는 다양한 종교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농경사회와 관련된 초식동물 소의 기본적인 정서적 특성은 유유자적의 여유·한가로움·평화·근면·헌신·봉사·인내·풍요 등이다. 도교에서 소는 유유자적을 의미한다.

구름이 걸려 있는 산중턱 오솔길에서 소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신선의 모습을 그린 신선도는 바로 도교의 영향이다. 한편 유교에서 소는 의(義)를 상징한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의우총(義牛塚)에 관한 전설이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게 하여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하며 의로운 성품을 잘 보여준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내면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나 `심우도(尋牛圖)’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것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은 호가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長養)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목우자(牧牛子)였다. 불교와 더불어 윤회, 환생을 믿는 힌두교에서는 특히 흰 소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 절대 먹지 않는다. 대부분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힌두교 사원 중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의 정문은 언제나 황소가 수호하고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이 우직하고 온순하며 끈질기고 힘이 세고 순종하는 소의 속성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이미지와 속담과 풍속을 만들어냈다. 우리 민족에게 소는 단순히 일하는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되었다.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만 아니라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으며 진창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가는 운송수단의 역할도 담당하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최후의 금고 역할까지 했다. 제주도 삼성혈 신화나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는 소가 농사신으로 까지 인식되고 있다. 신라 토우들에서도 물소가 발견된다.

소를 생구(生口)라고 부를 만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인격시하기도 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밭을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귓속말로 대답하기를,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질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또 우리 조상들은 소의 순박하고 근면하며 우직하고 충직한 덕을 기려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牛步)’, `돌밭을 가는 소(石田耕牛)’, `우행(牛行)’ 등의 말은 소의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들이다.

2009년 기축년은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소의 해이다. 혜안이 가득한 커다란 눈, 정면을 향해 뻗은 뿔, 근면하고 성실한 힘, 유순한 내면, 인내하는 소의 덕성으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적인 경제난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집집마다 풍요가 가득 찬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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