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풀밭 위로? 달빛이 굴러간다
바람이 빈 손을 마주칠 때마다
풀잎들의 서슴없는 고갯짓
달빛은 굴러 노래의 안개가 되고
안개 층층 흐르다가 눈이 멀은 한 사흘을
오, 눈빛 고운 금잔화여
2
떠나간 이 그리운 날은
별 총총 풀잎 곁에 안부 하고
오동잎새 떨어지던 유년을
손발 끝에 헤어도 보다
그것마저 영영 안 오는 날은
낮잠 한 두름 처마 맡에 걸어놓고
3
돌아 왔구나, 불러도 못 닿을 청빛 하늘 머릴 감고
아직 부끄러움 몇 군데 남아
네 유순한 이마 물살 지우며
세상 가장 정정(淨淨)한 데만 오시는
눈물 같이
눈물 모으는 능금꽃 이파리 같이
4
빈 들이고 싶다
빈 들에 남아 남은 빛들 쪼아먹고
잠 못 드는 새떼이고 싶다
초록색 물소리로 흐르다가
바람 조금씩 살아와
마알간 살 떠도는
대숲이고 싶다
5
언제 다시 맨몸으로 열병 앓을 날 온다면
우리의 그치지 않는 노래
까만 숯덩이로 남을 그 날 어둠 속까지 가
마른 잔디의 비가(悲歌)가 되어 나부끼리라
가르마 같은 5월의 산울음 되어 오리라
▷전남 해남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82년『한국문학』신인상, 198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돼 등단. 시집으로「아리사의 눈물」(1979),「다섯 계단의 어둠」(1984)등이 있으며 한국시조작품상,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
전체가 5 부작으로 짜여진 이 시는 잘 다듬어진 시어로 신선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각 부마다 클라이막스의 긴장과 집약적 수법으로 이미지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1부의 각 행마다 움직이는 동작의 비유와 상징적 묘사가 시를 보다 활기에 넘치게 한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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