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공간의 정치, 이미지 정치
<달구벌 아침> 공간의 정치, 이미지 정치
  • 승인 2012.07.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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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18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당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속속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자신이 왜 나왔는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계획인지, 다른 후보와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는 출사표는 하나같이 거창하다.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장소’다.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조경태 후보는 국회 기자실을 이용했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조 후보는 자신의 처지처럼 담담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반면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아오던 손학규 후보의 출마 선언은 거창했다. 손 후보는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세종대왕이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국민과 소통하고 민생을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후보는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을 출마 선언의 장소로 택했다. 독립공원은 서대문구치소가 있던 자리로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던 역사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구상을 밝힘으로써 문 후보는 민주주의를 향한 변함없는 의지를 널리 알리려고 했다.

경남지사를 사직하고 나온 김두관 후보는 다소 뜻밖의 장소에서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 후보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한 길을 떠났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서 전남지역을 대장정의 출발지로 삼아 호남 민심의 주목을 받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마을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 장관을 지낸 자신의 인생 역정처럼 아래로부터 시작하여 위로 올라가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민주당의 김영환 후보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립과천과학관 앞에서 출마의 변을 발표하였다. 김 후보의 출마 선언 장소는 자신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전북에서 지역구를 옮겨서 종로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한 민주당 고문 정세균 후보는 청계천 광장 시장을 출마 선언 장소로 잡았다. 광장시장은 서울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이곳에서 정 후보는 자신이 경제전문가로서 서민들의 삶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다.

새누리당에서 첫 번째로 출마 선언을 한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대표는 국회 기자실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 의사를 접은 이재오 의원은 국회 내에 있는 의원동산에서 자신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은 강의를 나가던 서울대 캠퍼스에서,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각각 출마 선언을 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정치인들은 장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는 예외다. 박 후보는 장소 선택에 고심을 한 끝에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선택했다. 이곳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이다. 박 후보는 이곳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경선 룰 선정과정에서 불통이라는 인상이 강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불식시키는 곳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타임스퀘어는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기도 해서 젊은층의 지지기반이 취약한 박 후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각 후보자들이 특정 공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 형성에 활용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를 공간의 정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색깔, 문양, 공간 등을 가지고 자신의 메시지를 간명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은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만 모든 후보들이 이런 이미지 정치에만 매달려서 정작 중요한 국가 운영의 비전 제시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지는 말하자면 포장지다. 포장지도 상품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상품이 아닌가? 상품이란 국가 운영의 비전, 정책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시장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포장지가 아니라 상품의 내용일 것이다. 각 캠프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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