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B급 정서의 힘
<대구논단> B급 정서의 힘
  • 승인 2012.08.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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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스피치컨설턴트

가수 싸이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노래 강남스타일 가사에 숨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싸이는 이렇게 답했다. “가사에는 풍자와 비꼼이 있어야 하지만, 이 노래에는 없다. 날씨는 덥고 경제는 엉망이다. 이러한 때에 그저 재미있고 열정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그 이상은 없다.”

본능을 자극하는 19금 가사를 부산 사투리로 부른 밴드 장미여관의 `봉숙이’. 남성의 심리를 대변하는 솔직한 가사가 담긴 보사노바풍의 이 노래는 지난 5월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었다. 이들에게 왜 이런 곡을 만들게 됐는지 물었다.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1차원적으로 말하기,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화법이 우리의 방식이다.”

이밖에도 싱글 앨범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로 기성가수들과 경쟁하며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했던 용감한 녀석들. 정형돈은 데프콘과 갱스터랩 그룹인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팀을 결성해 `올림픽대로’라는 노래로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1위를 휩쓸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쉽고 재미있다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리고 멜로디도 간결하다. 거기에다 유머가 있다.

이들 정서를 B급 정서로 간주하기도 했다. B급 정서란 용어는 단순히, 1류, 2류, 3류와 같은 예술의 급을 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하위문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를 말하는데, 불특정 다수가 웬만큼 좋아할만한 요소나 연출보단 비주류적인 감성과 묘사를 내세우는 것을 뜻한다. 고상한 주류문화가 채울 수 없는 가려운 구석을 긁어줘 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특히 기존 틀을 깨부수고 문화의 빈틈을 메우기 때문에 전체 문화에 다양성을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마이너에게 통쾌함을 주면서 공감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B급 정서의 음악들을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친숙하지만 약간 저급인 가사, 그래서, 뭔가 촌스럽고 덜 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B급 정서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음악 자체가 B급은 아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뿜어내는 B급 정서는 남녀노소 국적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다가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B급 정서의 음악 장르라고 하면, 락, 펑크, 힙합, 재즈를 들 수 있다. 과거 비주류가 즐기던 `B급 문화’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당당하게 주류 대중음악의 일부로 인정받는 장르들이다. 이처럼 B급 문화는 비주류의 벽을 넘어 `A급’으로 화려하게 귀환하기도 하지만, 모든 B급 문화가 주류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특유의 저급함과 거친 모습을 버리지 않고서 비주류라는 한계를 벗어 던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B급 정서를 유지하되, 포장만큼은 품격을 높여야 비로소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즉, B급 정서와 가치관을 B급처럼 만들어 대중에게 어필하려고 하면 안 되고,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춰야, 즉, B급 정서를 포장하는 수준을 높여야만 대중들을 상대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물론 B급 정서 음악에 팬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갈린다. 비슷비슷한 아이돌 일색인 가요계에서 단비 같은 존재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가볍기만 하고 진지함이 없는 음악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음악들을 수용하는 미디어와 팬들의 태도이지 않겠는가? 조금 저렴해 보이면 어떠한가?

기성세대조차도 지난 시대로부터 강요받았던 엄숙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유행에 동참해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문화적 소통 방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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