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인문학에 빠져보자
<달구벌 아침>인문학에 빠져보자
  • 승인 2012.09.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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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원(대구은행 부행장)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통섭의 시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통섭(統攝)... 조금은 생소한 이 단어가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통섭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를 `통섭’으로 번역한 말로서, `지식의 대통합 특히,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되고 있다. 이종(異種)학문 간의 결합을 의미하는 Convergence(융합)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섭-학문 간 경계를 넘어선 지식의 대통합’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질만능주의가 빚어낸 우리 시대의 핵심적 가치는 물질적 부의 획득과 창출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과 실용과학 등이 인기 있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역사와 철학, 문학 등과 같이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연구하는 인문학은 어느새 우리에게 생소한 학문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국내외 일류 대기업 CEO들이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창조적 경영, 고객감동경영, 나눔 경영을 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10대 그룹의 한 인사담당자는 “고객감동과 나눔 경영은 가장 세련된 전략이 요구되는 분야이며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능력과 인간애(愛)를 갖춘 이들만이 고객감동과 나눔 경영을 자연스럽게 꽃피울 수 있다”는 점에서 통섭형 인재, 즉 과학과 인문학을 겸비한 인재가 요구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문학 명문’인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의 애덤 포크 총장은 지난해 방한 강연을 통해 “인문학은 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와 정치의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에 정의ㆍ도덕ㆍ자유와 같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인문학은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고 창의적 문제해결방법과 도덕적 규율을 갖게 하며, 자신과 이웃 나아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품성을 길러준다”고 했다. 성과와 결과물에 집착하던 과거와 달리, 주변과의 교감과 배려가 중시되는 현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근본가치인 인문학이 매우 중요하고, 오히려 더 위력을 떨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사실, 경제의 불확실성이 급증하면서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은 기업 입장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임직원 역량항목 중의 하나이다. 또한 불황기에 기업이 지속성장을 구현해 나가기 위해선 기업의 브랜드, 명성과 같은 무형적 가치를 높이는 경영전략을 선택하고, 제품과 디자인 등에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담음으로써 고객을 사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이는 것이 새로운 경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위기극복의 대안을 인문학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경영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으면 실패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통섭형 인재로 평가받고 있는 스티브 잡스도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컴퓨터를 만들면서도 평범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인간적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제품에 인문학 요소를 가미하는 것, 그것이 스티브 잡스가 경이로운 일을 하게한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가 인문학이 소외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시대의 흐름은 새롭게 역사와 철학, 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각박해진 것도, 강력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통섭형 인재까지는 아닐지라도, 인문학적 소양이 사회 전반에 더욱 필요해진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인문학적 감수성이야 말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역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한권의 역사책과 철학책, 문학책을 추천해 주는 센스를 보여주자. 그것이 기성세대인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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