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順風) 역풍(逆風)
순풍(順風) 역풍(逆風)
  • 승인 2012.12.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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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
세상을 살다보면 ‘순풍(順風)에 돛 다는 것’보다 ‘역풍(逆風)에 돛대 부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 신문사 문화부 책상위엔 서점보다 신간시집이 더 많이 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일 년에 국내에서 시집이 만권도 넘게 나오다 보니, 신문사 문예담당기자에겐 하루 평균 스무 권 가까운 시집이 쇄도한다. 신문 귀퉁이에도 신간시집 이름이 잘 실리지 않는다. 신간 소개가 되자면 필자의 저력(문필력)보다 담당기자의 자비심(?)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깊이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신문 문화면에 시집(또는 서적) 신간소개를 아까운 지면을 할애하여 실어주는 것은, 독자들에게 새 시집과 다리를 놓아주는 지상 최대의 적선(積善)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필자의 신간시집 소개가 나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님이 구세주보다 고마웠는데, 전화벨이 기절초풍하게 요란히 울려 헐레벌떡 달려가 받아보니 서울에 있는 X장애인협회 사무실인데 갖은 죽는소리를 다 하면서 고가의 물품을 강매하려 들어 수화기를 얼른 놓고 말았다.

신간 소개를 보고 “아, 시인 선생님이시죠? 저는 선생님의 애독자인데 이번 선생님의 주옥시집을 꼭 읽어보려고 시집을 주문하려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금을 보내 드릴 테니 입금계좌번호를 불러 주세요. 시집 발송하실 때 주소를 불러 드립니다. 이번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꼭 되길 빕니다. 아울러 건필도 빌고요” 이 정도의 전화가 와야 살맛이 날 텐데, 장애인을 빙자한 멀쩡한 화상들이 염치없는 구걸을 일삼으니 세상은 말세로다.

필자의 경우, 30번째 시집을 냈지만 중학교 제자(이상욱 변호사)와 문경시청의 발간 비 1회 지원 등 다섯 번을 빼고 25권의 시집을 자비(自費)로 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필자 같은 소인(小人)이랴.

왜 팔리지도 않는 시집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서른 번이나 냈느냐? 굳이 변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남기고 싶어서고, 억수로 많지는 않지만 필자의 시를 읽고 뿅(?)가는 애호가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다.

필자는 비주당(非酒?)이 되어 절대 남에게 술을 대접하지 않는다. 술을 대접하면, 곧바로 술잔이 내게 돌아와서 평생 술 한 잔 안마시고 세운 금자탑 아닌 금주탑(禁酒塔)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술 인심은 야박하다고 할 화상이 더러 있을 법하지만 책 인심은 끝내주기 좋다. 지금까지 몇 만권의 책을 공짜로 돌렸다. 술을 대접하면 술로 인해 뒷탈이 날 수도 있지만, 필자의 기발한 시세계에 빠지면 미녀보다 달콤하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지금까지 남에게 못할 짓하고 모질게 한 적이 전혀 없지만, 책을 공짜로 나눠주어 마누라보다 필자의 책에 쏙 빠져 부부관계가 소원해 졌을까봐 조금 염려도 된다. 시집을 내봐야 몇 권 팔리지도 않고, 몇 권 팔아봐야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목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시집 자주 내는 관성이 붙어 한해 최저 한번 넘게 시집이나 수필집을 내지 않고는 좀이 쑤셔 배길 수 없다.

필자를 만나서 좋은 음식을 사주는 사람보다, 필자의 저작물을 읽고 솔직하게 소견을 말씀해 주는 분이 내게는 짱이다.

생전에 중진시인 구상 선생이 초일류 시전문잡지회사에서 주옥시집을 냈는데, 연말에 결산을 해보니 전국서점에서 도합 9부가 팔렸다.

S문학사에서 낸 시인의 시집 중엔 실적이 ‘0’도 있었다고 한다. 구상 선생 시집이 그 출판사에선 최고 실적이었다. 필자는 S문학사라면 뿅 간다. 베스트셀러를 조작하지 않는 시적 양심이 억만 불도 넘는 고귀한 가치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든 사람이 성자가 되라고 설교는 않는다.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불우한 장애자를 등에 업고 가난한 시인을 괴롭히지 말기를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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