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 승인 2012.12.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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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대구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은 모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아마 ‘말표 고무신’이었던 것 같다. 고무신은 거의가 검은 색이었고 흰 색 고무신은 그야말로 좀 ‘있어 보이는’ 신발이었다. 여자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자애들도 대개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같은 재질의 꽃모양 고무 리본이 달려있거나 조잡하지만 좀 색깔이 들어있으면 그게 ‘꽃신’이 되었다.

고무신은 그냥 신고 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고무신의 앞 주둥이를 안으로 밀어 넣어 자동차를 만들어 놀았고 발가락에 걸어 멀리 차기 놀이로 축구공을 대신 했다. 강에 가서는 송사리를 잡아 고무신에 담았고 그 고무신을 물에 띄워 고래 운반선이라며 놀았다. 때로는 고무신이 선생님의 손에 쥐어져 매 대신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한 번 제대로 맞고 나면 우리들 뺨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었다.

어쨌거나 그 때의 고무신이건 지금 내가 지금 신고 있는 구두이건 모든 신발은 그 사람의 전체를 담고 있는 그릇이 된다. 옷이나 이불도 우리 몸을 휩싸고 있지만 사람의 몸을 고스란히 담는 것으로는 신발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신화나 전설, 민담과 같은 옛 이야기에서 신발은 한 사람의 신분과 자질, 인격을 내포하고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많이 나타난다.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에 자신의 발이 맞았기에 신데렐라일 수 있었고, ‘콩쥐팥쥐’의 콩쥐는 잃어버린 꽃신을 찾고서야 고을 원님의 부인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신지 말아야할 ‘빨간 구두’를 신었다가 평생 원하지 않는 춤을 추어야했던 소녀의 이야기도 있고, 출애굽기의 모세는 야훼 앞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서야 야훼와 소통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신어야할 신발과 벗어야할 신발이 있는 것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이라는 신발 그림은 신발의 앞부분이 아예 사람의 발로 되어있다. 자신과 자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 일치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얼마나 강렬했기에 이런 그림을 다 그렸나 싶다.

서정주 시인은 시로써 같은 얘기를 한다.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신발을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떠내려 보내 버린 후, 아버지가 그것 대신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지만 그것은 대용품일 뿐이었다고 ‘신발’이라는 시에 써 두었다.

나도 그 고무신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하면서 살아 왔는데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이 ‘대용품’이거나 ‘빨간 구두’가 아닐까 때때로 고민된다. 이 신발이 나를 가두는 족쇄가 될 것인지 나를 이 개울물에서 저 넓은 바다로 데려다 줄 배가 될 것인지 신발을 신고 있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천명이라는 나이를 맞은 내가 이러한데 어제 대입 수시모집 합격통지를 받은 아들은 오죽할까.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지역대학의 지질학과에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합격했다. 나는 문학을,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했기에 우리 내외는 지질학을 모른다. 그러나, 지질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대학과 취업에 대해서 좀 아는 지인들로부터 지질학은 선호도가 그리 높은 학문 분야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 차례 들어왔다.

아들은 중학생 때부터 지구과학 공부에 몰두하더니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지질 탐사를 한다면서 온 데를 쏘다녔다. 심지어 이웃 학교 행사에 혼자 끼어들어 탐사를 다니기도 했다. 밤늦게 아무것도 아닌 돌조각들을 들고 와서는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보는 화석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기가 직접 채집한 화석이라며 감격하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아들이 지질 탐사보다는 시험 점수 올리기에 더 집중하기를 바랐다.

어쨌든 아들은 그렇게도 원하던 지질학과에 합격을 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사 줄 요량으로 합격 축하 선물로 뭘 사 줄까 물었더니 지질 탐사용 망치를 사달라고 한다. 그런 망치도 있나? 아들은 이제 새 신발을 신는다. 이 신발이 콩쥐의 꽃신, 백설공주의 유리 구두, 아니,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 속 신발처럼 아들의 발에 꼭 맞기를 기도한다. 아들아,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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