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역지사지(易地急地)
<팔공시론> 역지사지(易地急地)
  • 승인 2009.04.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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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얼마 전 치과에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던 중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하여 덮어 놓았던 여러 겹의 소독포를 치워 달라고 선생님에게 급히 부탁하였다. 치운 후 한참동안 숨을 크게 쉬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안정된 뒤에 다시 작은 소독포만을 간단히 얼굴에 덮고 나머지 치료를 마쳤다.

수술 소독포를 의식 있는 상태에서 온 몸에 다 덮어 놓으니 호흡이 답답해지고 덥고 캄캄하여 뼈에 구멍을 뚫는 `드릴’ 소리를 참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머릿속에서는 턱 뼈의 신경을 다치지는 않을까 어설픈 노파심까지 생겨 한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수술포를 치우고 나니 온 몸이 시원해지고 기분도 안정되었다.

치료하는 선생님은 5분만 참으면 끝난다고 했지만 환자 당사자인 필자는 매 순간 답답하고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느낌으로 호흡조차 어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전에도 두 번이나 같은 치료를 받았었지만 이런 해프닝은 없었다. 왜 그랬는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으나 다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필자의 병원에서도 종종 수술 중에 덥다며 한 겨울에도 덮은 담요를 치워달라거나 수술대에 누워 10분 정도 기다리게 될 때면 짜증을 내고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겠다고 내려오는 환자들을 볼 수 있다. 어떤 남자 환자는 얼굴의 흉터 수술 후 흉터가 벌어져 재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2번이나 수술대에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 나서 소독까지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이상하다. 저렇게 예민해서야 어떻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나’ 의아해 했는데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보니 수술 도중 벌떡 일어나는 환자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별나다고 치부해버리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원인을 찾아내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마취 주사만 해도 그렇다. 치과 치료 전 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을 때 입술을 흔들거나 주위를 움직여 주면 통증이 훨씬 적게 느껴진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환자에 대한 이런 배려를 보고 필자도 요즘에는 수술 전 마취할 때 주위 피부조직을 가볍게 흔들어 가면서 마취 주사를 놓고 있다. 의사도 자신이 환자 입장이 되면 환자 기분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을 해보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의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맹자의 이루상(離婁上)을 보면 맹자와 제자 공손후의 문답이 있는데 역지사지와 같은 내용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와 후직은 난세에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여 학당에 머물렀기 때문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았고 공자도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여겼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는데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를 즐긴 안회를 칭찬하였다. 맹자는 하우, 후직, 안회가 같은 뜻을 가졌다고 하였다.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맹자는 이 세 사람의 생활 방식을 통하여 사람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 보라는 말이다.

최근 집안의 결혼식이 있어 KTX를 타고 지방에 간 적이 있었다. 동반 석에 앉아 오래간만에 만난 형제들끼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열차 승무원이 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금 조용히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하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동반 석에 앉았던 승객들이 떠들어 필자가 직접 조용히 해달라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난 상태라 직접 가서 항의 겸 요구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그 같은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일반적으로 자기 잘못에는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는 비판적이기 쉽다. 마태오복음 7장에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안에 있는 대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대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라고 쓰여 있다.

일본 속담에 풋감이 홍시를 애도한다는 말이 있다. 풋감이 홍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머지않아 자기도 그렇게 되는 줄도 모르고 불쌍히 여긴다는 뜻으로 그다지 차이가 없는 자가 약간 뛰어난 것을 난 체 하고 이것저것 말참견 한다는 비유이다. 우리 말에도 숯이 검정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속담에 `의사의 불섭생’이란 말도 있다.

남에게 섭생을 권하는 의사 자신은 오히려 섭생을 잘하지 못하여 일찍 수명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인데 봉사 제 점 못 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경계하고 남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겸허하게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라는 옛 사람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은 오늘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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